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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사진 한 잔] 겨울눈

Winter Snow No.1, Huangshan, Anhui, China, 2016. ⓒYE Wenlong 葉文龍

 

한겨울의 황산. 검은 소나무가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눈송이는 멈춘 것도 있고, 흐르는 것도 있다. 멈춤과 움직임,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이 한장의 사진 속에서 흐른다. 대자연 속에서 언제 내릴지 모를 눈을 기다리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하지만 간절한 기다림 끝에 눈을 만나는 순간, 다시 오지 않을 풍경과 마주한다. 중국 사진가 예원룽은 지난 5년 동안 매년 겨울 그 찰나의 풍경을 좇아 수만 리를 달렸다.

예원룽은 고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봉우리와 절벽이 장관인 저장성 산악지대 옌당산 출신이다. 고대로부터 이 풍경에 영감을 받은 시인들의 시가 5000편이 넘는다. “산과 강은 언제나 내 혈통의 일부였다”고 말하는 그는 텅 빈 산을 채우는 회색빛 비, 비단처럼 일렁이는 바다, 하늘과 바다가 이어지는 갯벌까지 자신만의 산수를 만들었다.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중국 사진계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중국촬영금상장을 수상하기도 한 그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창작의 방향을 잃은 것이다. 사진은 그저 자연을 복제하는 것인가. 나는 풍경을 옮겨놓는 ‘운반공’에 불과한가. 도저히 셔터를 누를 수 없어 세 번이나 황산 기슭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날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 계곡물 속에서 사진 한장을 얻는 순간 문득 황산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산’을 어떻게 찍을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39도가 넘는 고열도 그의 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황산에서 보낸 첫 사흘 동안 두 차례 폭설이 내렸고, 그는 창작의 흥분에 빠져들었다. 절제미가 흐르는 평소 작업과 달리 이때 촬영한 사진들에는 유독 기쁨이 넘쳐흐른다. 이 사진이 바로 그 황산 작업에서 탄생한 ‘겨울 눈 No.1’이다.

 

풍경사진의 기본인 ‘깊은 피사계 심도’를 포기하고 대신 빠르거나 느린 시간을 택했다. 8000분의 1초의 플래시로 찰나를 정지시키고, 동시에 느린 셔터로 날리는 눈발의 궤적을 담았다. 추위는 살을 에지만 아름다움은 비범하다. 렌즈 앞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눈송이는 세상 무엇도 개의치 않고 대지를 뒤덮는다. 그 앞에서 현실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은 잠시 하나가 된다. 그렇게 겨울눈은 예원룽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나의 산’이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만의 ‘신산수(新山水)의 서사’를 펼쳐가고 있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