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면을 응시하는 단발머리 여성. 그리고 그녀의 어깨 위로 온전히 몸을 기댄 남자. 장난스러운 커플의 셀피처럼 보이지만, 이 사진 안에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관계의 방향이 숨어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성의 시선이다. 세상의 무게쯤은 모두 감당할 수 있다는 듯한 단단한 눈빛.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몸은 남자의 무게에 눌려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카메라를 작동시키는 셔터릴리즈 케이블이 여성이 아닌 남자의 손에 들려 있다. “내가 바로 사진가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중국 상하이 출신의 사진가 픽시 랴오는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친밀함과 젠더의 역학, 그리고 관계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권력의 방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구해 왔다. 사진 속 여성이 바로 픽시 자신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며 수많은 이미지를 접한 그녀는 보다 창조적인 영역으로서의 사진에 매료됐다. 이후 멤피스대에서 사진전공 대학원 과정을 밟던 중 ‘관계의 실험(Experimental Relationship)’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사진을 향한 자신의 진짜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원생이자 이미 직업을 가진 픽시와 막 학부를 졸업한 일본인 남자친구 모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역할과 감정, 여성의 경험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에 도전하고 그것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다.
이 작업은 현실의 특정 장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마치 평행우주 속 또 다른 자신들처럼 관계를 연기하고 실험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다. 제스처와 색채, 공간을 활용한 그녀의 이미지들은 친밀한 순간을 하나의 무대처럼 펼쳐 보인다. 관계란 무엇이며 사회는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탐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늘 스스로 강인한 여성이라 여겼지만, 현실 속의 자신은 사진에서처럼 언제나 흔들리고 버거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20년 가까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둘 사이의 관계는 계속 변해왔다. 가끔은 셔터를 누르는 권력을 그와 나누기도 했다. 함께 시간을 견디며 만들어낸 관계라는 이름의 서사. 두 사람이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이 이상적인 관계라 믿는 그녀의 생각은 20년 후 또 어떻게 확장될까.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Pr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구MBC] Frozen Gaze 잉여의 시간 展 ⋯조선희 작가의 '얼음 속의 새' (0) | 2026.06.02 |
|---|---|
| [매일신문] [전시속으로] 소멸의 시간을 붙잡다…조선희 사진가, 대구서 개인전 개최 (0) | 2026.06.02 |
| [영남일보] [석재현의 사진 귀 기울이기] 벽으로 가는 길 (0) | 2026.06.02 |
| [대구신문] [전시 따라잡기] 조선희 사진작가 개인전…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내달 6일까지 (0) | 2026.06.02 |
| [대구일보] 조선희 사진전 ‘프로즌 가제(Frozen Gaze):잉여의 시간’…보존과 소멸의 역설 (0) | 202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