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새’, 죽음 이후 기억 재현보다 감정 흔적 머물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탄생의 순간부터 사라질 존재라는 숙명을 부여받는다. 삶과 죽음은 서로 상반된 개념이지만, 하나를 떼어 내면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한 분리가 불가능하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로 받아들이지만, 죽음을 피부로 실감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자신의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가 가장 강렬하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도 삶의 표면 아래 숨겨져 있는 죽음의 차가운 얼굴과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영적으로 강렬하게 연결된 이들의 죽음이다.
특별한 존재의 죽음을 경험하며 죽음은 비로소 자신의 절박한 문제로 부상한다.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지금 곁에 있는 모든 것이 얼마나 덧없는 시간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처절하게 상실을 경험하는 순간은 바로 그 때다.
사진작가 조선희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삶의 허무를 드러내는 인생 최대의 사건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견딜 수는 있게 됐지만, 죽음이 그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놓았으며, 그의 예술세계를 지지하는 핵심 기반이 됐다.

조선희 작가의 개인전 ‘Frozen Gaze : 잉여의 시간’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개막했다. 전시에는 투명한 얼음 속에 갇힌 죽은 새들의 사진들이 걸렸다. 사진 속 죽은 새들의 모습에서 죽은 상태인지는 잘 감지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죽음에 대한 애도나 찬사 같은 개념들을 어설프게 고정되기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새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프다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감상일 뿐이고, 죽은 자에게는 어쩌면 더 아름다운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예술세계의 출발점이다.
“죽음이 아름다운 상태일 수 있다”는 그의 인식은 죽은 존재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작가의 내면 상태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환경과 관련된 특수 목적의 공적 단체로부터 죽은 사체를 인계한 후 사체에 물을 부어 얼리게 되는데, 이 순간 죽은 존재의 사라지는 시간을 늦추려는 작가의 마음이 개입된다.
“아버지가 제가 열네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때 아버지가 너무 빨리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죽은 새들이라도 조금 늦게 사라지게 하고 싶었고, 그것이 얼리는 것이었어요.“

얼리는 행위, 오래 붙잡고 싶은 욕망
돌아가신 아버지 너무 빨리 사라져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감상일 뿐
죽음은 단절 아닌 형태 변화 시간
죽은 새를 얼리는 행위는 죽은 존재를 더 오래 붙잡고 싶은 남겨진 자의 욕망이다. 작가는 그런 욕망의 개입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촬영하는 순간만큼은 죽은 자의 입장을 고수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공포를 배제하고, 죽음 이후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얼린 새의 사체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때다. 그 시점을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 얼음으로 차갑게 봉인된 죽음이 다시 물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생과 사의 경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죽음을 단절된 끝이라기보다, 형태가 변화하는 시간으로 바라봤어요. 얼음이 녹아내리는 순간의 새는 단순한 사체가 아니라, 사라짐과 남겨짐 사이를 통과하는 존재가 되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포착하려는 그의 의지는 사진 속 새가 남긴 피의 흔적에서도 드러난다. 일부의 사진에는 죽은 뒤 흘러나온 피의 흔적이 선명하다. 얼음 속에 번진 붉은 피는 그에게 체온의 잔상처럼 느껴졌고, 피의 흔적은 그에게 죽음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생의 감각으로 다가왔다.
“사진 속 피는 생명의 부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살아 있었음“을 가장 강하게 증명하는 흔적입니다.”
사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포토그래퍼로 30년간 활동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정재, 정우성, 장동건, 송혜교, 이효리, 유아인, 신민아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그를 거쳐 갔다. 그런 그가 순수예술로 선회한 것은 2018년이다. 우연히 작업실 앞에 죽어있는 참새를 발견하면서 예술사진을 본격화했다.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그의 사진이 기록이나 재현의 역할에서 “존재론”이라는 감각과 사유의 매체로 전환하는 전환점이 됐다.
순수예술 사진으로 전환하며 확연한 변화가 포착된다. ‘살아있는 피사체’에서 죽은 피사체로의 확장이다. 로드킬 당한 새들, 썩어가는 과일, 말라버린 꽃, 녹아내리는 얼음, 부식된 표면들이 화려한 스타들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죽음에 대한 사유’가 상업사진 안에서도 작동했다는 것.
“상업 사진을 찍을 때도 배우의 눈가에 맺힌 눈물, 얼굴 위에 내려앉은 새와 같은 장치들을 스타들의 이미지 속에 개입 시키며 죽음과 상실을 감각을 은유하려 했어요.”
상업사진과의 결별은 준비된 수순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순수예술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광고와 패션, 잡지 사진을 선택했다. 그런 사진들이 그에게 명성을 안겼지만, 늘 마음속에 돌덩이처럼 짓눌렀던 순수예술에 대한 열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금이 파인아트(순수예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시기라고 판단했어요.”

전환점은 2017년의 세계 여행이었다. 그는 157일 동안 아프리카와 남미 등을 돌며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 누구라도 감탄할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그러나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던 그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건 제사진이 아니었어요. 운 좋게 아름다운 풍경을 포착했을 뿐이었다.”
그 깨달음은 순수예술로 돌아서는 결정타가 됐다. “사진이 단순히 현실을 ‘테이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유와 철학을 담아내는 매체여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다시 출발선으로 돌려세웠다. 그것이 지금의 ‘얼음 속 새’ 연작으로 이어졌다.
새들은 모두 세워진 상태에서 촬영된다. 수평의 상태인 죽음을 수직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원근감과 깊이감을 제거하는 것도 그의 선택이다. 여기에는 극도로 평면적인 화면을 추구하려는 태도가 녹아있다. “사진이지만 회화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의 사진은 그림과 사진의 경계에 놓여있다.
죽은 새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고, 현실이 환영처럼 흐려진 것은 경계를 향한 그의 의지의 표명이다. 그의 예술은 정확히 경계에 위치하려는 의도로 점철된다.
작업은 우연과 통제가 뒤섞인다. 소재를 선택하고 얼리는 행위는 철저한 작가의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심지어 얼릴 때 수돗물을 쓸지, 정수된 물을 쓸지, 온수는 얼마나 섞을지도 그가 통제한다. 얼음의 투명도를 최적화하기 위한 선택들이다.
하지만 얼음이 녹는 속도, 새의 상태, 반복적인 냉동 과정에서 생겨나는 균열과 피의 흔적은 우연의 산물들이다. 녹였다 얼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새의 부리 사이로 스며 나오는 피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연적인 상황들을 통제의 실패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작업의 일부로 적극 수용한다. “사물에게도 존재론이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물은 자기만의 성질과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가 얼음 안에서 어떤 형태로 자리 잡는지를 끝까지 지켜본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사라지기 전에 급히 촬영해야 할 때는 서둘러 셔터를 누른다.

30년 활동 한국 대표 포토그래퍼
157일 동안 남미 등 돌며 수만장
제 것 아닌 ‘아름다운 풍경’만 포착
제 사진 찍으려 순수예술로 선회
“실체에 완벽하게 부합할 수 없다”는 그의 사유는 최근 새롭게 시작한 한지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 한지 위에 사진을 프린트한 작품 1점을 걸었다. 사진 인화 후 화학 약품과 커피, 불 등을 사용해 작가적 터치를 더하고, 한지를 구기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다시 훼손하고 변형했다.
“기억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흐려지고, 어떤 감정은 과장된 채 되돌아옵니다. 저는 이러한 불완전한 기억과 유예된 감정을 한지 위의 주름, 부식, 침전의 과정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제 작업은 기억을 재현하기보다, 사라지지 못한 감정의 흔적을 물질 위에 머물게 하는 데 가깝습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조선희 개인전은 6월 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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