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구조 닮은 이미지 배열, 감각 재구성 시도
대구 루모스서 한 달간 전시…관람자 해석에 맡긴 열린 서사

▲ 나현철 사진전 ‘무경계 속 속삭임’ 포스터
대구의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사진작가 나현철의 개인전 ‘무경계 속 속삭임(Whispers in the Boundless)’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콘텐츠연구소와 루모스가 공동 주최·주관하는 지역작가 시리즈의 세 번째 기획으로, 지역 기반 작가의 작업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연속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의 시선과 작업 방식이 응축된 이번 전시는 지역 미술계에서 축적된 실험적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주목된다.
전시는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이어지며, 4월 4일 오후 5시에는 작가와의 오프닝 프로그램이 마련돼 작품 세계를 보다 밀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제공된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꿈’이다. 작가는 꿈속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고 연결되는 방식을 사진의 구성 원리로 끌어온다. 꿈은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 감각, 외부 자극이 뒤섞이며 단편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감각의 흐름이 존재한다. 나현철의 사진 역시 이와 유사하게, 일상에서 수집된 이미지들이 명확한 서사 없이 배열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 무경계 속 속삭임 ©나현철
이러한 이미지 배열은 기존의 인식 질서를 해체한다.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대상은 다른 이미지와의 병치를 통해 낯선 맥락 속에 놓이고, 그 결과 관람자는 익숙했던 사물과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변형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 자체를 다시 묻는 과정에 가깝다.
전시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대체로 일상적이다. 거리의 풍경, 사소한 사물,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주된 소재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기록의 기능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포착된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재배치되며, 현실의 연속성은 느슨해지고 새로운 감각의 층위가 드러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간극’에 주목한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은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그 간극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가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그 사이를 채워가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전시는 하나의 완결된 메시지를 제시하기보다,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구조를 취한다. ‘속삭임’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반영한다. 강하게 규정되지 않은 이미지들은 관람자의 내면과 만나며 서로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사진 매체에 대한 접근 역시 주목된다. 이번 작업에서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미지와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또 다른 현실을 생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병치될 때 대상의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 질문된다.
이는 현대 사진이 지향해 온 ‘재현을 넘어선 이미지’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동시에 작가 개인의 작업 맥락에서는 도시와 일상, 시간의 층위를 탐구해 온 이전 작업들과도 연결된다. 과거 ‘복개도로’, ‘시간의 조각들’, ‘Tools’ 등에서 드러난 일상의 구조 해체 시도가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내면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확장된 것으로 해석된다.
나현철 작가는 독일 폴크방 종합예술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과 사진을 전공하고 디플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국내외에서 꾸준히 개인전과 단체전을 이어왔다. 대구사진비엔날레, 동강국제사진제 등 주요 전시에 참여하며 작업 영역을 확장해 왔고,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청년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이력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축적된 작업이 어떻게 동시대적 감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지역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지역성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인 감각과 인식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전시는 경계가 느슨해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변화를 주요 화두로 제시한다. 개인과 타인,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때, 우리는 익숙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하며, 관람자에게 스스로의 감각을 되묻게 한다.
전시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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