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 전통 의복인 ‘추바(Chuba)’를 입은 남자. 그런데 신발은 현대식 운동화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기 위해서 이 정도는 갖춰 신어야 한다는 듯. 이곳은 티베트 서부에 우뚝 솟은 카일라스 산 밑동을 도는 순례길 ‘코라(Kora)’다. 해발 5000m가 넘는 이곳은 산소 부족과 모래폭풍, 추위까지 겹쳐 인간에게 매우 비우호적인 환경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가 수백, 수천㎞ 떨어진 이곳을 찾아 죄업을 씻기 위해 순례길을 걷는다. 티베트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그리고 뵌교까지 네개의 종교가 모두 이 산을 신성시한다. 종교적인 이유와 험악한 지형 탓에 카일라스 산은 지금까지도 미정복 봉우리여서 ‘금지된 정상’이라 불린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삶의 어떤 의미를 찾는 걸까. 독일 사진가 사무엘 주더의 ‘Face to Faith’ 시리즈는 소설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소설 속 주인공이 무너진 삶을 회복하고자 떠난 곳이 바로 이 산이었다. 인간과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에 관심이 많았던 주더는 카일라스에 강하게 이끌렸다. 문명과 단절된 장소, 인간에게 가혹한 환경일수록 사진적 흥미는 더 커지니 말이다. 2012년, 그는 대형 필름 카메라와 무거운 삼각대 등 지극히 느린 방식의 장비를 챙겨 이곳에 도착했다. 촬영 자체를 하나의 의식처럼 만들어 순례자들의 고요한 초상을 담기 위해서였다.
성스럽고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담요를 등에 멘 농부, 고아 소녀와 양어머니, 인도에서 온 부자도 길 위에서 차를 끓이고, 서로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쩌면 이들에 가장 힘든 건 카일라스까지 오는 여정이었고, 54㎞의 코라는 마지막 단계일 뿐이었다. 주더 역시 순례길 끝에서야 비로소 완벽한 장소와 피사체를 만났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산을 ‘정복’ 대신 ‘경험’한 사람들. 긴 여정의 흔적과 마침내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스민 얼굴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혹한의 새벽, 장노출 촬영을 하다 보름달 달빛을 받은 카일라스와 마주한 순간 작가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카일라스가 순례자들을 불러모으는지, 왜 이 시리즈의 제목이 ‘Face to Faith’인지 말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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