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퍼마켓 진열대. 양파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초록 채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저 평범한 진열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단서가 숨어 있다. 얼굴 혹은 신발. 단서를 따라가다 보면 숨겨진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채소들과 같아 보이도록 ‘위장’을 했지만, 어쩐지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진가는 수퍼마켓 식료품 코너나 잡지 진열대 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부터 베네치아, 폼페이 유적 같은 상징적인 장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숨기는 퍼포먼스를 진행해 왔다. 그는 왜 자신의 몸을 숨기고, 또 발견해 주기를 원하는 걸까.
예술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한 리우 볼린이 ‘보이지 않음’을 처음 경험한 것은 2005년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이 몸담고 있던 예술가 마을이 강제 철거되는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철거를 막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전시를 열며 갖은 애를 썼지만 작업실은 폐쇄되고 동네는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집과 작업실에 대한 애착, 자신이 느낀 무력감, 그리고 일종의 항의를 표현하기 위해 첫 위장 사진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온몸에 물감을 칠한 채 작업실 잔해 사이에 서 있는 사진이 ‘Hiding in the City’ 시리즈의 시작이 되고,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비단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급속한 발전이 과연 윤택한 삶으로만 이어졌을까. 군중 속에서, 도시 속에서, 정치 속에서, 경제 시스템 속에서 개인들은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런 현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리우는 자신의 몸을 도구이자 상징으로 사용한다. 자신이 사라질수록 주변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특정 장소에 몸을 숨기는 작업은 언제든 발견될 수 있는 불완전한 위장에 가깝다. 어쩌면 리우의 사진은 사라지는 인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지를 묻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미 사회에는 너무 많은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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