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ress

[대구신문][전시 따라잡기] 사진작가 주재범 개인전…아트스페이스 루모스 28일까지

사라져가는 식물 모습서 삶·시간 흔적 기록
초기엔 아름다운 모습 포착 노력
시든 꽃에서 생에 대한 열망 발견
소멸 직전 고유 곡선·리듬감 보여
이미지 확대하자 동양화 분위기
한때 영화 포스터·광고 촬영 매진
바다서 육지 바라보는 사진 시작

주재범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치장한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 내적·외적 꾸밈을 지속한다. 동물이나 식물이라고 다르지 않다. 생존을 위한 진화를 거듭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치장을 완전히 걷어내고 본질과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모든 존재는 죽음과 마주하며 사회적 역할과 외적 치장을 내려놓고 치장 전의 근원적인 상태로 돌아간다.

주재범 작가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사진작가 주재범의 예술 주제는 ‘존재의 형태(Shape Of Being)’다. 그가 말하는 ‘존재의 형태’는 치장 이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를 그는 말라가는 식물에게서 찾는다. 생명을 다한 이후, 살아있는 동안 머금었던 수분을 어느 정도 비워낸 식물에게서 존재의 고유한 형태를 발견한다.

 

그는 “소멸되기 직전에 살아있는 동안 드러내지 못한 자신만의 고유한 곡선과 리듬감을 보여준다”면서 식물이 수분을 일정부분 비워낸 상태를 “식물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형태”라고도 했다.

 

주재범 작 ‘존재의 형태’

 

그의 사진 대상은 꽃이다. 흔히 꽃이라고 하면 가장 화려한 순간을 포착하기 마련이지만, 그의 시각은 좀 다르다. 그가 주목하는 꽃은 화려한 생을 마감하고 시들어가는 상태다.

 

꽃과의 특별한 만남은 꽃을 좋아하는 아내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집에는 늘 꽃이 함께했고, 화병에 꽃이 꽂혀 있는 일주일 동안의 집안 분위기는 싱그러웠다. 그의 아내는 꽃이 시들면 새로운 꽃으로 교체했다. 

 

시든 꽃은 사라지고 다시 싱싱한 꽃이 꽂힌 화병을 보는 것은 그에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당연시하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으로 다가왔다.  버려진 꽃에 수분이 날아가며 말라가는 과정에서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꽃의 형태를 발견하게 된 것.  그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 

 

“생기가 걷힌 꽃에서 제가 포착한 것은 마지막 순간에도 생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태우는 존재 본연의 모습이었어요.”

 

꽃 본연의 모습에 대한 포착은 그에게 새로운 형태의 발견과 같았다. “생명이 잦아드는 순간에도 생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태운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됐습니다.”  말라가는 과정에서의 변화는 미세했지만,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는 식물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했고, 그는 그 순간을 기록했다.

 

작업 초기에는 화병에 꽂혀 있던 시절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착하려 노력했다. 꽃의 시든 꽃의 화려한 변신은 빛을 조절하고, 색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촬영한 꽃의 모습이 본질보다 더 예쁘게 치장된 이미지, 즉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다가왔다. 그러면서 인식의 전환을 꾀했다.

 

“꾸미거나 연출하는 대신 말라가는 식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형태를 바라보고 담담하게 기록 하자는 쪽으로 작업의 방향을 틀었어요.”

주재범 작 ‘존재의 형태’.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식물 본연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촬영 과정에서의 섬세한 노력이 부가됐다. 얇은 식물을 빛 위에 놓고, 그 위에 유리를 여러 겹 올려 빛의 투과율을 조절했다. 식물의 두께와 밝기에 따라 유리의 층을 조정하면서 말라가는 식물의 모습은 검정, 회색, 흰색의 균형을 맞춰갔다.

 

촬영할 때의 카메라는 고해상도를 원칙으로 했다. 촬영한 이미지를 해체한 후, 이미지의 일부만을 크게 확대해서 작품화할 때, 고해상도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미지의 일부를 확대하자 사진의 새로운 미학이 드러났다.

 

대상의 일부를 확대할 때, 초점이 맞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전자는 형상이 또렷했고, 후자는 흐릿하게 처리됐다. 흐릿한 효과는 마치 손으로 문지른 듯 한 질감의 효과를 가져왔다.

 

말라가는 꽃이나 식물을 촬영하고, 촬영한 이미지의 일부를 확대하자 드로잉이나 동양의 수묵화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드로잉이나 동양화적 느낌은 작가가 의도한 결과다. 그런 분위기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흑백의 대비를 끌어들인 이후 얻는 효과다.

 

그는 “백이 있어야 흑이 보이고, 흑이 있어야 백이 보인다”는 인식 아래 흑과 백의 동양 미학을 사진 매체에 적극 도입했다. “여백을 백으로, 대상을 흑으로 표현하며 여백과 대상의 관계를 동양적인 미학으로 수렴합니다.”

 

한지의 사용도 동양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그는 여러 겹의 한지를 겹친 두꺼운 종이를 인화지로 사용한다. 이때 닥나무 섬유인 한지의 표면의 질감이 이미지와 만나면서 깊이를 더한다. 인화된 사진은 유리 액자 대신 보호 스프레이로 처리한다. “액자 없이 전시된 사진에서 관람객은 종이 표면의 섬유와 작은 흔적까지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주재범 작 '존재의 형태'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그의 사진에는 초현실성이 도드라진다. 현실 속 식물을 기록했지만, 현실 같지 않은 결과를 도출한 것. 이는 실제 존재하는 현실 속 대상을 확대하고, 흑백의 대비로 연출하며 낯설게 바라보기를 시도한 결과다. 그의 이런 노력은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려는 예술의 본성과 정확히 부합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들 중에서 왜 자연이었을까? 이에 대해 그는 “자연이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형태가 아니라, 식물이 스스로 만들어낸 형태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런 이유로 제 사진은 식물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기록인 것입니다.”

 

식물을 대상으로 하기 이전, 그는 어린 소녀를 피사체로 삼았다. 이때 특정한 모델을 섭외하기보다, 공원이나 바다에서 만나는 익명의 소녀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때 빛과 소녀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포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최근 그는 바다 사진도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바다를 육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배 위에서 육지를 향해 바라보며 촬영한다는 사실이다. 이 작업 역시 자연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외부의 간섭 없이 존재하는 세계. “식물에서 시작된 질문을 바다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소녀, 말라가는 식물, 섬에서 바라본 육지 등은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대변한다. 그는 각기 다른 대상들에서 존재의 본질적인 형태를 발견한다. 그것은 “존재는 어떻게 드러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주재범 작가의 개인전 '존재의 형태'가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한때 그는 영화 포스터나 광고 사진 촬영에 매진했다. 사진을 전공한 이후 예술 사진 작업을 지속해 왔지만, 결혼 후 생계유지 문제가 부각되자 포스터 사진과 광고 사진 등의 상업 사진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버닝’ 등의 포스터나 스틸 컷이 그의 대표작이다.

 

영화는 빛, 인물, 공간, 감정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며,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분위기와 서사를 한 장의 이미지로 압축해 전달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영화 포스터는 촬영자에게 높은 시각적 해석 능력을 요구한다.

 

그는 영화 포스터를 단순한 광고 사진이 아닌, 영화의 세계를 하나의 이미지로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해했다. 영화 속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의 긴장을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은 그의 사진적인 감각을 확장하는 경험이 됐다.

 

“영화의 특정 장면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 영화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했습니다.”

 

2020년은 그가 다시 예술사진으로 돌아오는 분수령이 됐다. 영화 산업의 요구와 마케팅 전략을 반영하는 사진을 지속하며 개인의 사유나 철학을 반영하는 사진 작업으로의 변화 욕구가 차올랐다. 그러면서 시들고 말라가는 식물을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형태와 존재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그는 ‘삶과 죽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사유’를 시작했다.

 

주재범 개인전 '존재의 형태'가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주재범의 작업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압축해 보여주는 이미지다. 영화 포스터에서는 영화의 서사를 한 장의 사진으로 응축하고, 예술 사진에서는 사라져가는 식물의 모습 속에서 삶과 시간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상업 작업과 예술 작업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으면서도 하나의 시선 속에서 연결돼 있다. “저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본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존재 자체를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개인전 ‘존재의 형태’는 2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대구신문 2026.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