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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경북일보] 사라짐 이후 드러나는 존재, 주재범 사진전 ‘존재의 형태’

시든 식물의 형상으로 생과 사의 경계 포착
21일부터 3월 28일까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 주재범 사진전 ‘존재의 형태 Shape of Being’ 포스터


라틴어로 ‘빛’을 뜻하는 LUMEN에서 이름을 가져온 대구 사진전문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가 2026년 첫 기획전으로 주재범 개인전 ‘존재의 형태 Shape of Being’을 개최한다. 전시는 2월 21일부터 3월 28일까지 진행되며, 오프닝은 2월 21일 오후 5시다.

이번 전시는 생명이 소멸한 이후 식물에 남는 형상을 통해 ‘존재’가 어떻게 감각될 수 있는지를 사진 매체로 탐구한다. 시들어 생기를 다한 가지와 꽃, 꽃잎을 촬영한 흑백 이미지들은 사라짐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형태와 리듬을 기록한다.

▲ 주재범 작품

△소멸 직전, 가장 선명해지는 존재

작업은 식물이 생기를 잃은 뒤에도 남아 있는 수분과 시간의 흐름에 주목한다.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 작가에게 이 경계의 순간은 존재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인위적 연출을 최소화한 채 자연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기다린 후 촬영된 이미지들은 생과 사, 현존과 부재의 경계를 응시한다. 검정으로 표현된 식물의 형상은 넓은 흰 여백 속에서 떠오르듯 부각된다. 마치 수묵화처럼 번지는 잎맥과 줄기의 결은 애잔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남긴다.

△사진의 역설, 부재를 통한 현존

전시는 사진이 지닌 역설적 속성에 주목한다. 사진은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이지만, 동시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고정한다. 존재의 현존을 보여주면서도 부재를 드러내는 매체다.

비평가 김웅기는 이를 “안티노미로만 드러나는 존재의 형태”라고 평한다. 카메라 앞에 실재했던 대상은 이미지로 남는 순간 인덱스(index), 즉 흔적이 된다. 그러나 그 흔적은 오히려 관객의 감각을 자극해 사라진 생기를 분위기로 소환한다. 삶을 보존하면서도 죽음을 창출하는 사진의 본성을 전복해, 죽음을 통해 삶을 환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흑백의 간결함, 형태의 본질

주재범은 흑과 백의 극단적 대비로 형상을 압축한다. 검은 피사체는 흰 공간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생명은 빠져나갔지만, 껍질과 결, 미세한 잎맥은 여전히 유기적 긴장을 품고 있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시들어 버린 식물은 소멸 직전 비로소 자신의 형태를 드러낸다”고 적는다.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순간. 그 찰나를 흑백이라는 최소한의 언어로 포착한다.

△상업과 순수 사이, 사진가 주재범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한 주재범은 2001년 ‘GIRL’ 연작으로 주목받았으며, 2024년 서울에서 ‘Shape of Being’을 선보였다. 대구사진비엔날레 기획전 ‘FOREST’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상업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해 영화 ‘버닝’, ‘7번 방의 선물’, ‘블랙머니’, ‘승리호’ 등의 포스터 작업을 맡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상업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존재와 시간에 대한 사유를 담은 순수 사진 프로젝트다.

‘존재의 형태’는 명확한 서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이미지 앞에 머무르며 각자의 감각과 시간을 겹쳐보는 자리로 열린다. 사라진 형상을 통해 존재를 다시 묻는 이 전시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조용히 숨 쉬는 또 하나의 시간이다.

 

곽성일 기자kwak@kyongbuk.com

2026년 02월 19일 목요일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