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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중앙SUNDAY] [사진 한 잔] 타인의 시선

Venice Beach, California. 2014. ⓒHaley Morris-Cafiero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웃는 여성.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무표정과 냉소, 설명하기 어려운 조롱의 기색. 그녀가 입은 티셔츠에는 ‘BLONDIE(블론디)’ 글자와 함께 매력적인 금발 여성이 프린트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상적인 금발 여성’의 이미지와 ‘현실의 여성’이 한 화면 안에 겹쳐진다. 이 사진은 하나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나는 블론디 티셔츠를 입고 있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블론디는 아니다.”

사진 속 여성은 작가 자신이다. 헤일리 모리스-카피에로.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인식을 탐구하는 ‘Wait Watchers’ 작업으로 알려진 미국의 사진작가다. 한때 그녀는 자기 체벌에 가까운 다이어트와 과도한 운동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갑상샘저하증으로 운동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학적 원인이 밝혀졌다고 타인의 시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몇 번의 유쾌하지 않은 경험은 오히려 그녀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타임스퀘어 같은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공간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왜 자신에게 집중되는가. 이후 작가는 5년간 마이애미·베를린·파리·프라하·페루 등 전 세계 관광지와 번화가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자신을 프레임 안에 세우고, 동시에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타인의 시선을 함께 기록했다.

이 작업은 헤일리식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보정도 없는 날것의 자화상. 그녀가 포착한 타인의 표정에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호기심과 놀라움, 의심과 조롱까지. 작가 자신도 인정하듯 사진 속 타인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아트의 전략, 스트리트 포토의 집요함, 몰래카메라의 요소까지 그녀의 작업에는 여러 층위가 뒤섞여 있다. 그래서 웃다 보면 불편하고, 상처인가 싶다가도 해방감이 스친다. 그리고 마지막에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타인을 평가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그 시선을 통해 자신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6.02.28 983호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