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과 후’…초점은 그 사이에 흐른 시간
런던 유학 때 “10년 후 다시 찍자”
10년 후 친구 ‘전·후 초상화’ 완성
비교 아닌 사진 속 공백 상상하게
함께 걸린 지도는 관객을 여행자로
관객은 친구를 ‘나와 비슷한 누구’
사진은 ‘붙잡기’ 아닌 ‘연결 도구’

공간 입구에 새겨진 공항의 입구를 알리는 표식을 밟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시간차를 두고 촬영한 동일한 인물사진이 병치돼 있고, 세계 지도와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은 문자들도 걸려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The Decade : The map that leads to us(10년: 우리에게 이르는 지도)전을 열고 있는 사진작가 배진희의 작품들이다.
그의 사진들은 마치 기승전결이 분명한 한 편의 서사 같다. 관객은 그가 펼쳐놓은 서사 속으로 빨려들 듯 ‘입국’하게 된다. 전시장 입구부터, 벽에 걸린 작품들까지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사진이라는 틀 속에서 보면 순간포착이라는 사진의 속성을 한참 벗어나 있다. “저의 사진들은 시간을 걷고 관계를 통과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배진희에게 사진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가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인간’이다. 정확히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그의 탐구 주제다. 그가 인간 삶의 본질로 주목하는 것은 ‘시간’과 ‘관계’다. 그에게 인간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관계를 만드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본질을 사진예술로 펼쳐내는데 작가적 열정을 할애하고 있다.

이번 전시작에서도 ‘시간’과 ‘관계’라는 개념은 두드러진다. 프로젝트의 출발은 영국 유학 때인 2005년이었다. 그는 유학 시기 런던의 하우스 셰어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각자의 꿈을 안고 타국인 영국에 모였었다. 당시 그는 지구촌의 다양한 국가들에서 온 친구들과 생활하며 하나의 질문을 도출했다. 그것이 “우리는 왜 여기 왔을까”였다.
10년 전,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의 제안을 건넸다. 현재의 모습을 촬영하고, “10년 후 다시 만나 사진을 촬영하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정확히 2006년의 일이었다. 친구들은 ‘wonderful day’를 꿈꾸며 타국인 영국에 머물렀고, 그는 그런 친구들을 대형 필름 카메라에 담았다. 친구들의 모습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함께 살던 공간과 공기를 사진 속에 저장했다.
“젊은 친구들은 ‘wonderful day’라는 꿈이 있어, 힘든 영국 생활을 기꺼이 견뎌냈어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6년, 그는 길을 떠났다. 10년 전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건넸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10년전 가졌던 친구들의 ‘wonderful day’가 실현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유학 시절 하우스 쉐어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은 각자의 조국으로 돌아갔거나, 외국인과 결혼 후 배우자의 나라에 거주하거나, 여전히 영국에 체류하며 사는 등 다양했다.
그는 일단 다양한 경로를 통해 친구들의 소재부터 파악해갔다. 많은 친구들은 거주지가 파악이 됐지만, 일본 친구들 중 일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소재가 파악된 친구들에게 촬영 여부를 물었고, 허락한 친구들의 현재 모습을 담기 위해 그들의 거주지로 날아갔다.
‘10년 후의 기록’ 프로젝트는 2년에 걸쳐 이어졌고, ‘10년 전’과 ‘10년 후’의 초상화는 그렇게 완성됐다. 이번 전시에 10년 전,후 사진이 나란히 병치했다.

표면적으로 그의 프로젝트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기록하기 위한 ‘재촬영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단순하게 시간의 전후를 비교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 흐른 시간, 즉 사진에 담기지 않는 공백을 어떻게 상상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진은 찍는 순간 바로 과거가 되지만, 그 사이의 시간은 관객의 상상 속에서 계속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벽면을 채운 사진들은 ‘10년 전의 런던’과 ‘10년 후의 거주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젊은 시절, 비슷한 조건과 불안 속에 놓여 있던 친구들의 얼굴은 10년 뒤 전혀 다른 배경 앞에 서 있다. 어떤 이는 대학 교수가 됐고, 어떤 친구는 디자이너로 살고 있고, 또 다른 인물은 낯선 나라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그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성공’이나 ‘변화’의 서열을 발견하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들과 얽혀 있는 사회적 조건, 장소, 관계의 층위를 보여주려 했다. “점 점 더 많은 배경을 프레임 속으로 끌어들이며, 친구들이 현재 위치한 관계들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10년 전과 10년 후의 사진에서 친구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10년 전 사진에서 친구들의 시선이 카메라를 응시했다면, 10년 후의 사진에서는 시선이 정면에서 비켜나 있거나, 몸을 공간 속에 맡긴 채 서 있다.
그것은 작가가 더 이상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는’ 방식이 변했음을 드러낸다. 지난 10년 동안 친구들의 삶이 변화했듯, 작가로서의 그의 관점 역시 변화했다는 방증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일본 친구들을 찾는 과정이다. 그는 끝내 찾지 못한 일본 친구들을 찾기 위해 오사카에서 개인전까지 열었다. 전시 기간에 그는 SNS를 통해 친구 찾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찾고자 하는 친구의 초등학교 동창과 연락이 닿았지만 끝내 당사자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일본 친구들을 찾는 과정과 그들의 10년전 사진을 이번 전시장 한 켠에 펼쳐놓았다. 찾지 못한 친구들의 공간에서는 사진 대신 편지 한 통과 10년 전 촬영한 영상만이 놓여 있다. 이해되지 않는 언어, 완결되지 않은 서사는 오히려 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관계란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도달 가능하며, 모든 시간은 끝내 완전히 회수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사를 전시장 공간 전체로 확장했다. 전시장에 사진과 함께 걸린 지도는 프로젝트의 구조를 이루는 핵심 장치다. 친구들이 속한 지역의 공항 이름, 영국으로 수렴하는 항로, 그리고 갈림길처럼 배치된 동선은 관객을 ‘여행자’의 위치에 놓는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움직임 속에서, 관객은 작가와 친구들의 여정 위를 걷게 된다.

이번 전시에선 또 하나의 전환점이 발견된다. 그는 또 다시 10년 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0년의 기록에서 20년의 기록을 계획한 것. 그 20년을 향해 가는 현재, 작가는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10년 후에 다시 만나고 싶다. 응하고 싶지 않다면 이 메일을 무시해 달라”라는 내용이었다.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또 한 번의 초대에는 두 명의 친구만 응답했다. 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10년 후 프로젝트 제안에 대해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이번 전시에 소개하고 있다. 그는 20년의 기록을 계획하며 친구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찾고 기록하는 자신의 행위가 그들에게 폭력일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찾아가는’ 방식에서 ‘기다리고, 불러들이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가능한지를 질문했다.
배진희의 작업은 개인적 서사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그 결은 보편적인 감각으로 확장된다. 유학, 이주, 진로, 가족, 국적, 비자, 나이, 외모의 변화 같은 요소들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경험이 된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작가의 친구들을 ‘타인’이 아닌 ‘나와 비슷한 누군가’로 인식하게 된다. 그 순간 이 작업은 다큐멘터리도, 자전적 기록도 아닌, 관계에 대한 집단적 초상으로 전환된다.
그의 사진이 인간 삶의 속성을 꿰뚫다는 단초는 그가 사진을 생의 한 순간을 ‘붙잡는’ 대신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서로 다른 시점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그 사이의 시간을 관객에게 건넨다. 그에게 사진은 서사를 이끄는 매개이며, 이는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치가 된다. 그의 사진에서 관객이 자신의 연대기를 떠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10년 전의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구와 연결돼 있는가?”. 전시는 1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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