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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사진 한 잔] 낮잠

The Nap, Yamal Peninsula, Russia. 2017. ⓒCharles Xelot

 

7시간 동안 거대한 눈보라에 갇혀있을 때다. 영하 25도를 밑도는 날씨,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 가시거리는 거의 제로였다. 그 속에서 스노모빌과 함께 눈에 파묻힌 이 청년을 발견한 사진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행여 위급한 상황일까 스친 걱정은 이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청년은 세상 평온하게 단잠을 즐기던 중이었다. 러시아 야말반도의 툰드라에선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낮잠이었다. 수천 년 동안 유목 기반의 삶이 이어져 온 땅, 사진가 샤를 젤로는 열여덟 청년 드미트리와 이렇게 만났다.

프랑스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가 젤로는 시베리아 북서쪽 야말반도를 촬영했다. 천연가스전을 개발하는 초대형 에너지 프로젝트가 그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북극의 깊은 속살에 세워진 대규모 산업현장과 주변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았다. ‘야말’은 현지어로 ‘땅끝’이란 뜻이다. 1년 중 7개월이 겨울이다. 여름에도 얼음이 둥둥 떠다니고 겨울엔 얼음 두께가 2m가 넘는 극한의 환경이다. 하지만 천연가스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이곳에 천연가스전을 세웠다. 유목민들과 순록 떼가 오가던 툰드라는 개발시설들로 채워지고 유조선과 쇄빙선들이 순백의 밤을 밝혔다.

덕분에 마을과 학교가 생기고, 병원 같은 인프라도 갖춰졌다. 하지만 물고기가 줄어들고 네네츠족 원주민은 삶의 터전을 잃어갔다. 젤로는 이 점에 주목했다. 변화하는 삶의 풍경과 디스토피아 적인 산업 인프라. 장기간 진행된 그의 다큐멘터리(There Is Gas Under the Tundra)는 두 가지 시선의 균형 잡기에 성공했다. 사진 속 드미트리는 대학 진학 대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네네츠족에게는 “걷는 리듬을 잃는 순간 땅은 위험해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툰드라의 위험은 미세한 전조로 시작한다. 얼음의 두께와 바람의 방향, 발밑의 촉감이 달라지는 작은 리듬에 따라 멈출지, 나아갈지를 선택한다. 온몸으로 환경과 신호를 주고 받는다. 그 리듬을 알아챘기에 드미트리는 평범한 낮잠을 즐겼을 것이다. 천연가스 개발이 한창인 툰드라의 ‘걷는 리듬’이 지금은 어떨까. 드미트리의 대답이 궁금하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6.01.17 977호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