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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중앙SUNDAY] [사진 한 잔] Tokyo Compression

Tokyo Compression #018, 2009. ⓒThe Estate of Michael Wolf


출근 시간의 지하철은 이미 포화 상태다. 문이 닫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한 뼘의 자리를 위해 몸을 비튼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뒤섞여 든 유리창엔 지하철의 온기인지 나의 숨결인지 모를 김이 서린다. 차창에 비친 여성은 선명한 이목구비 대신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일상의 무게감을 내어준다. 일상적인 출근길,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내는 방식에서 도시가 가하는 압력을 읽어낸 사진가는 독일 출신의 미하엘 볼프(Michael Wolf)다.

미하엘 볼프는 시각 커뮤니케이션과 포토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에게 사진은 인간의 조건을 관찰하는 도구였다. 하찮아 보이는 장면에서 상징적 가치를 찾는 일. 그는 이상하게 아름답거나 흥미로움에 본능처럼 끌렸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을 하나만 찍으면 그냥 사진일 뿐이지만, 그걸 100장 찍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패턴과 차이점이 보이고, 사회적 논평이 생겨난다.” 1995년 일본의 지하철에서 유리창에 얼굴이 눌린 사람들을 촬영한 그는 ‘미래의 주제’ 폴더에 이미지를 저장했다. 그로부터 13년 뒤 같은 지하철역으로 돌아간 미하엘은 4년 동안 매년 같은 날,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역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질문했다. “이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그의 ‘Tokyo Compression’ 시리즈를 두고 사람들은 일본인에게 무례하다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도쿄에 대한 작업이라기보다 초거대 도시에 사는 삶에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그곳이 도쿄든 서울이든 홍콩이든 파리든 말이다. 도시는 기회를 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희생을 어떻게든 살아내고 견뎌낸다. 그러니까 사진 속 유리창과 열차의 문은 도시의 시스템이 인간에게 가하는 한계의 은유다. 통계 수치가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감각, 그는 사람들이 사진 속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하길 바랐다. 사람과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기록해온 미하엘 볼프는 2019년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멋진 도시의 스카이라인 대신, 늘 그 속에서 버텨내는 사람들의 온도를 향해 있던 ‘시각적 인류학자’라고 말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5.12.20 973호 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