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형광 조명 아래 콘크리트 구조물이 실루엣을 드러낸다. 이곳은 어디일까. 실제로 존재는 하는 곳일까. 호기심 가득한 우리의 뇌 회로는 공상과학 영화 속 미래도시를 떠올리다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일본의 캡슐 호텔 이미지를 병치시키기도 한다. 뭐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이 공간에는 묘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현실은 늘 고약한 법. 이곳엔 인간이 강제로 적응하며 살아야만 했던 지독한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지난 2011년 유례없는 폭우와 수차례의 열대성 폭풍이 태국 전역을 휩쓸었다. 수백 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집을 잃었으며 경제적 손실이 430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태국의 사진가 미티 루앙크리티아는 프랑스 르몽드지 의뢰로 수해 지역을 취재 중이었다. 언론은 혼란스럽고 극적인 상황을 주로 보여줬지만, 그는 다른 시각에서 이 재난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 역시 방콕 우돔숙 지역에 사는 저널리스트인 동시에 불안 가득한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물에 잠긴 도시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내면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픈 마음은 그를 꿈과 초현실의 이미지로 이끌었다. 그래서 도시가 완전히 작동하는 낮 시간대 대신 신비롭고 정지된 시간을 닮은 밤과 새벽에 주로 작업을 이어갔다.
목까지 물이 차올라 정부 대피소를 찾았지만, 그곳마저 침수되자 일부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왔다. 조립식 시멘트 구조물이 늘어선 이 이질적 공간은 교통지옥 방콕에서 사람들의 행복한 발이 되어줄 스카이 트레인(BTS)의 건설 현장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다행히 이곳을 소유한 회사가 이재민의 주거를 허락했다. 임시 전기시설까지 가설된 이곳은 비교적 넓은 데다 위로를 나눌 익숙한 얼굴들과도 함께할 수 있어 사람들은 그나마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기후 변화와 도시 공간의 급속한 확장이 가져온 복합적인 도시 재난 속에서 새로운 주거지가 된 Space Shift, 텅 빈 차가운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람들의 작은 온기로 채워진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존과 적응을 탐구하는 신비롭고 낯선 현실’과 마주한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5.06.21 947호 31면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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