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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중앙SUNDAY][사진 한 잔] Flesh Love All

Flesh Love All-Yamada Family, Japan. ⓒPhotographer Hal

 

늘 ‘사랑’이 중심 주제라는 사진가가 있다. 기묘하고 강렬한 콘셉트의 인물 사진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일본의 가와구치 하루히코(川口晴彦). 그런데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진공 포장이라 숨이 좀 막힐 듯도 하다. 비닐 팩 속에 사람들을 넣고 진공청소기로 공기를 뺀 뒤 촬영을 하니, 혹시나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산소 호흡기와 구조 요원도 필수다. 진공 포장한 가족들의 사진을 담은 이 시리즈의 제목은 ‘Flesh Love All’. 작가의 작업 노트를 빌어 의역을 해보면 ‘세상의 모든 중심에 사랑이 있다’ 정도가 아닐까.

처음엔 그 대상이 커플이었다. 그의 작업 중 하나인 ‘Flesh Love’ 시리즈다. 혼자가 아닌 둘이어야 완전해지는 사랑의 시각화를 위해 밀착을 극대화한 ‘진공 포장’의 형식을 빌었다. 육체적 끌림, 강렬한 사랑, 서로가 불가분하게 얽혀 있는 이 공간을 두고 그는 ‘갇힌, 도가니 같은 곳’이라 표현한다. 사랑은 얼마나 밀착할 수 있는지, 하지만 밀착이 지나치면 어떻게 변질하는지, 열기와 압력, 시험과 도전이 끓어 넘치는 ‘사랑’은 도가니와 다를 바 없다. 보호나 보존을 위해 물건을 진공 포장하는 것과 달리 그의 작업은 너무도 물리적이고 노골적이라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 충격은 더욱 강렬한 메시지로 우리에게 안착한다.

사랑을 향한 그의 초점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처음엔 오직 피사체의 몸이었고, 다음은 피사체에 중요한 장소에서 인격적 정보를 더하다 최근 시리즈인 ‘Flesh Love All’에서는 가족을 담았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법처럼 여겨지던 팬데믹 시기에 그는 오히려 더 밀착된 사랑을 탐구하기 위해 이 시리즈를 발전시켰다. 집이며 나무며 자동차와 울타리까지 모두 비닐투성이에 진공 포장된 야마다 가족들의 평화로운 미소가 인상적이다. 사랑의 방향성이 연인에서 가족으로, 더 나아가 외부 세계로 확장된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야 할 시간에 반대로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시도했던 그의 작업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로 묶여 세상도 하나가 된다”고 말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5.06.07 945호 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