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마주한 느낌이다. 화사한 오렌지색 비행기가 지그재그 형태로 도열해 있고 아스팔트 바닥의 선명한 선들도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아주 작게 보이지만 이동식 계단을 밀고 가는 사람까지. 질서정연한 구조적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문득, 무언가 비정상적임을 깨닫는다. 여기가 어딘가. 보안이 철저하고 일반인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공항 계류장이 아닌가. 그런데 이곳의 비행기들을 그것도 하늘 위에서 촬영한다는 건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변수가 그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을 가능케 했다.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거의 멈춰버리고 수많은 공항의 활주로가 폐쇄되자 운항이 중단된 비행기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평소라면 공항 위를 비행하며 촬영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번이 기회다’ 싶어 도전을 감행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독일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탐 헤겐이다.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결국 독일 내 6개의 주요 공항에 접근 허가를 받은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공항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가지런히 세워진 비행기들의 대칭성과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창고와 주차장, 컨테이너, 대기선, 운영 구역을 나누는 패턴들까지. 모든 것들이 그에게 초현실적인 미적 요소로 다가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전 세계적 위기 상황을 재구성한 탐 헤겐. 그가 담은 비정상적이고 낯선 풍경과 더없이 섬세하고 강렬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속삭인다. 세계화의 상징이던 비행기들이 팬데믹의 상징이 되고, 넓은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던 항공 산업은 질병의 급속한 확산을 촉진한 주범이 되어버렸다. 다시 공항 대합실에 앉아 2020년 봄, 봉쇄의 상징으로 남은 공항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잠시 후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도시, 프랑스 아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 기이하도록 고요한 공항은 지금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언택트, 포스트 코로나가 인류의 화두였던 그때가 있긴 했었나 싶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5.007.05 949호 31면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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