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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경북일보] 이태헌 작가 사진전 ‘溺-빠져들다’, 20일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서 개최

이태헌 사진전 포스터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는 물방울 속 투영된 작은 이미지에서 세상을 발견하는 이태헌 작가의 ‘溺-빠져들다’를 20일부터 11월 3일까지 선보인다.

작가는 무미건조한 잿빛 도시의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물방울 속에서 기억의 파편을 마주한다.

물방울 속 투영된 작은 이미지를 보려면 인내심과 집요함이 요구된다.

그 인내심과 집요함 끝에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감정을 조우하게 되고 그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한다.

‘물방울 속 세상’에 빠져들어 내면의 이야기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이번 전시로 우리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태헌 작가는 말한다.

Untitle 07, 60×90cm, pigment print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는 어느 시인의 시이다. 내가 처음 마주한 물방울 속 세상은 참말로 그러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오래 보고 있지 않으면 그 안에 무엇이 있었다 사라졌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우리는 그 세상과 작별해야 한다. 짧지만 긴 그 시간 동안 물방울 속 세상에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평소 나는 그 물방울 속 세상을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상의 흐름에 순응하고 살고 있었다.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거대한 잿빛 도시 속에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그 도시는 늘 무미건조하게 다가왔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마주해야 하는 도시. 그것이 일상에서 사는 도시인이자 현대인인 나다.

Untitle 08, 60×60cm, pigment print
그 무미건조한 잿빛 도시 아래 물방울은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언뜻 보면 사람의 눈과 같기도 한 그 물방울에 다양한 사물들이 반영되는 모습을 보았다. 집 근처 공원의 가로수부터 전봇대, 전선, 아파트, 철거 중인 건물, 신호등, 지하철, 비행기 등, 물방울에 담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작고 우스워 보였지만, 그 반영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노라면 나의 내면 기억들과 조금씩 마주했다.

내가 반영시켜 본 그 사물들은 늘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 물방울 속에 있기에, 뚫어지게 빠져들다 보면 많은 감정을 일으켰다. 무심코 지나치는 광복절 도로의 태극기. 올림픽 선수의 금메달 영광 속 태극기는 누구에게나 가슴 벅찬 그 ‘무엇인가’ 이지만 내 기억 속 어느 태극기는 가던 길도 멈추고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깔따구, 108×108cm, pigment print
도심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나도 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네’ 하는 질투 어린 부러움.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당황스러움, 여행지에서 고생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드디어 집이구나’ 하는 그 안도감, ‘그 여행은 참 재밌었지!’ 하는 좋은 추억으로 남은 여행에 대한 향수까지. 막상 하늘을 유심히 살펴보며 지나는 비행기를 집요하게 보지 않는다면 그냥 그 비행기는 그 하늘을 지나칠 뿐이다. 하루에도 수십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지나간다.

물방울 속, 투영된 작은 이미지들을 몰입해서 보려면 인내심과 집요함이 요구된다. 그 인내심과 집요함의 끝에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감정을 조우(遭遇)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수 있게 된다. 그 작은 이미지는 강렬한 긴장감으로 매우 선명하게 각인되어 진다. ‘음극필반 양극필반(陰極必反 陽極必反)’의 이치처럼.

우리는 오늘도 이 잿빛 도시에서 살아가며, 늘 보던 일상의 반복된 풍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럴 때 나의 ‘물방울 속 세상’에 빠져들어 가보길 권유한다. 당신이 나의 사진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든지, 또 어떤 이야기를 꺼내든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물방울 속에 ‘무언가’를 보기 위해 빠져들다 보면 분명 당신도 기억의 어느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마주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이태헌 작가는 1982년 대구출생으로 대구외국어고등학교 졸업 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과대학원에 차례로 진학하여 한의학 석사학위를 받아 본업은 한의사이다.

사진 공부를 특별히 한 적은 없지만, 코로나19 기간에 캠핑을 다니다 밤하늘의 별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별 사진에서 풍경 사진으로 확장되고, 또 장노출 기법 등에 빠져서 사진기를 구매하여 본격적으로 촬영에 나섰다.

한국사진작가협회 대회에서 여러 번 입선하고, 사진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여전히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찾던 중 풍경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선루프에 떨어진 빗방울에서 발견한 ‘물방울 속 세상’에 매료돼 이후 물방울 속 세상을 찾아 여행하고 있다.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