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는 걸까. 거대한 굴착기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원형 바퀴에 거대한 삽이 줄지어 달린 버킷 휠 굴착기는 위압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거대한 기계를 멈춰 세우고자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작업 위험구역 안으로 맨몸의 사람이 들어서자 안전 문제로 작업이 중단됐다. 이곳은 독일의 작은 마을 뤼체라트다.
뭣이 중헌디.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람마다 생각하는 우선순위는 다르다. 당시 독일 정부가 앞세운 것은 에너지 안보였고, 환경운동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이 먼저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에 비상이 걸린 정부는 갈탄을 캐기 위해 뤼체라트 마을을 철거하기로 했다. 대신 인근 5개 마을을 보존하고, 이 지역의 갈탄 사용 중단 시기를 2038년에서 2030년으로 8년 앞당기기로 타협안을 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은 기후위기를 막겠다면서 굳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갈탄을 채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맞섰다. 독일의 사진가 잉마르 비욘 놀팅은 이 첨예한 대립의 모든 과정을 ‘강제 퇴거(Eviction)’ 시리즈로 기록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작은 농촌 마을 뤼체라트는 땅 속에 갈탄이 묻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운명이 바뀌었다. 정부의 갈탄 채굴 계획에 따라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났고, 마지막까지 남았던 농부는 자신의 땅에 환경운동가들이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2020년부터 빈집과 들판을 점거한 그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공동부엌도 만들었다.
경찰의 강제퇴거는 2023년 1월 11일 시작됐다. 나무와 돌, 공사용 펜스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연결하며 저항했지만 뤼체라트는 결국 사라졌다.
놀팅의 회상처럼 한때 환경운동가들에게 ‘꿈의 유토피아’였던 마을은 불과 며칠 만에 ‘에너지 기업의 요새’가 되었다. 그리고 마을 터는 노천광산 구역으로 편입됐다.
하지만 3년 반이 지난 지금도 사진 속 사람들은 여전히 거대한 굴착기 앞에 서 있다. 뤼체라트는 사라졌지만, 세계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기후정책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사진 속 거대한 갈탄 굴착기 너머로 늘어선 풍력발전기는 어쩌면 그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풍경일지 모른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사진 한 잔] 강제 퇴거 | 중앙일보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는 걸까. 거대한 굴착기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원형 바퀴에 거대한 삽이 줄지어 달린 버킷 휠 굴착기는 위압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거대한 기계를 멈춰 세우고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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