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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on/Upcomming

조선희 [Frozen Gaze 잉여의 시간]

 

사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공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다가오는 전시를 안내드립니다.

 

조선희 사진전 《Frozen Gaze : 잉여의 시간》이 2026년 5월 6일부터 6월 6일까지 개최됩니다. 이번 전시는 사라짐의 과정을 붙잡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얼음과 물,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이 특정한 상태에 놓이도록 조건을 설정합니다. 얼음은 대상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붕괴의 속도를 지연시키며 그 틈을 드러내는 매개로 작동합니다. 균열과 기포, 얼음의 결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형상을 감싸며, 그 위에 또 다른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냅니다.

 

얼음 속에 고정된 형상은 차가운 사실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낯선 추상적 이미지로 확장됩니다. 그러나 이 상태는 결코 지속되지 않습니다. 해빙의 과정 속에서 형상은 다시 흐트러지고 무너집니다. 고정과 붕괴가 반복되는 이 과정 속에서 이미지는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번 전시는 보존과 소멸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간의 역설을 드러냅니다. 붙들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은 이미 사라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관람자는 그 과정 속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전시는 2026년 5월 6일부터 6월 6일까지 진행되며, 5월 8일 금요일 오후 5시에는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 오프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개요
전시작가 : 조선희
전시제목 : Frozen Gaze 잉여의 시간
전시일정 : 2026년 5월 6일(수) - 6월 6일(토)

전시 오프닝 : 2026년 5월 8일(금) 17:00
전시장소 :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구 남구 이천로 139, 5층)

 

©조선희, Frozen Gaze

 

 

○ 작가노트

이미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예측할 수 없는 조건이 교차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나의 작업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특정한 상태에 놓이도록 조건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것을 조금 더 머물게 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죽은 새, 얼음, 한지, , 시간이 요소들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제각기 다른 시간의 결이 겹쳐진 물리적 장치들이다. 얼리는 행위는 보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붕괴의 속도를 늦추어 그 틈을 벌려놓는 일이다. 물은 얼어가며 스스로 결정화되고, 그 투명한 결속 속에서 미세한 파편화와 팽창을 반복한다. 이미 죽음으로 멈춘 형상을 다시 얼리는 것은, 그 존재 위에 고정과 봉인의 층위를 덧씌우는 일이자, 동시에 그 고정을 무너뜨리기 위한 조건을 설정하는 행위이다. 얼음의 투명함 아래에는 붕괴의 필연성이 잠복해 있다. 그것은 멈춘 것이 아니라, 가장 격렬하게 변화하는 중인 불안정한 침묵이다.

 

Frozen Gaze에서 사진은 오브제가 소멸 직전에서 멈춰 선 결정적 농도를 증명한다. 반면 영상은 그 고정된 상태가 비정형으로 흩어지고 다시 해체되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간의 흐름을 추적한다. 얼음이 생성되는 소리와 균열, 봉인되었던 형상이 녹아내리며 무너지는 과정이 그대로 노출된다. 형상은 보존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고정되고 다시 풀리며 끊임없이 변형될 뿐이다. 이미지는 하나의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변화의 단면이다. 이 변형은 한지 작업에서 더욱 집요해진다. 이미지는 한지 위에 인쇄된 이후, 물과 약품에 의해 다시 오염되고 굴절된다. 표면은 주름지고 번지며 형태를 잃어간다. 한지는 단순한 지지체가 아니라, 스스로 반응하며 이미지의 소멸을 지연시키는 능동적인 주체로 작동한다. 내가 사용한 빈티지 액자들 또한 이미지를 가두는 틀이 아니다그것은 타자의 초상과 역사가 머물던 시간의 흔적들이다. 나는 그 안에 고여 있던 낯선 기억들을 걷어내고, 그 비어버린 자리에 나의 새들을 앉혔다. 타인의 자취 위에 나의 소멸을 덧씌우는 이 행위는, 시간의 결이 쌓인 액자의 표면과 이미지의 소멸을 동일한 선상으로 흐르게 한다. 이제 액자는 이미지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상실이 서로 교차하며 머무는 물리적 장소이다. 결국 이 작업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오브제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미지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상태이며,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형태는 고정되지 않고, 물질은 스스로 변형되며, 이미지는 그 찰나에 잠시 머문다. Frozen Gaze는 감정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라짐이 진행 중인 상태, 본래 허락되지 않았던 잉여의 시간’, 그리고 물질이 스스로의 붕괴를 통해서만 존재를 드러내는 그 서늘한 조건을 보여줄 뿐이다.

 

조선희

 

○ 비평문

 

되돌아오지 않는 응시, 그리고 보존과 소멸의 역설

 

 

언캐니한 새

 

조선희의 사진에서 얼음 속에 박제된 새의 사체는 날카롭고, 섬뜩하며, 처참하다. 죽음과 소멸을 직시하게 하는 이 느낌은 새의 몸에 가해진 잔혹성의 흔적 때문이다. 카메라의 눈은 이를 섬뜩하게 포착하여 차가운 사실성을 더한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새들의 이미지는 흐릿하고, 작고, 연약하다. 이 이미지들은 대상이 가진 취약성을 부각하며, 생명 없는 사체임에도 관람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얼음은 새의 사체를 감싸며 회화적 텍스처와 추상적 레이어를 겹겹이 생성하고, 그 결과 사진 이미지는 기록을 넘어 초현실적 풍경으로 확장된다. 죽음을 붙잡고 그 외형을 보존하려는 시도와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멸의 시간 사이에서 관람자는 영원과 죽음, 현실과 환영의 긴장을 마주한다.

조선희는 새의 사체를 주워와 물속에 넣고 얼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얼음은 마치 캔버스가 된 듯 다양한 회화적 표현을 자동 생성한다. 냉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 성에, 기포의 집중과 분산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는 우연성을 따라 새의 몸을 감돌며, 낯설고 신비한 기류를 생성한다. 얼음의 질감은 새의 몸에 엉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조율하고, 그 속에서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화면이 형성된다. 얼음 표면에 맺힌 성에는 흐릿한 막을 이루고, 갈라진 결은 예측할 수 없는 선과 패턴을 그린다. 새의 숨결을 동결한 듯한 기포들은 얼음의 내부 공간에 입체적으로 자리하며 화가의 붓질보다 더 섬세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요소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조선희의 사진은 낯설고 밀도 높은 시각적 질감을 획득한다. 때로는 새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얼음 속에 스며들어 무채색 화면 위에 선연한 붉은 흔적을 남긴다. 이 피의 흔적은 죽음의 사실성과 추상적 화면이 교차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관객을 언캐니한 풍경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연의 효과는 수많은 반복 작업을 통해 점차 예측 가능성을 띠며, 조선희의 얼음 작업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로 자리 잡는다. 그 결과 하잘것없는 새의 사체는 신비의 막을 덧입고, 정지된 죽음으로서 초현실주의적 언캐니의 미학을 구현한다. 얼음 속에 고정된 새의 사체는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 아름다움과 섬뜩함, 취약성과 잔혹성이 공존하는 모순적 형상을 드러낸다. 이 이미지들은 사실성과 추상성, 회화성과 충격성이 교차하는 이중의 감각을 통해 관람자에게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체험을 선사한다. 감상자가 화면 가까이 다가서면, 얼음의 차가운 표면 아래에 스며든 붉은 피와 갈라진 균열이 눈앞에 생생히 드러난다. 그 순간 관람자는 단순히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소멸의 시간을 몸으로 섬뜩하게 감각하는 체험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실재의 충격과 되돌아오지 않는 응시

 

조선희의 사진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새의 주검축축한 붉은 털의 결과 부리에 남은 핏자국까지그 생생한 사실성은 섬뜩할 만큼 강렬하다. FROZEN GAZE_401836에서 눈을 뜬 채 죽음을 맞이한 새의 찢긴 몸은 인간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카메라의 냉철한 기계적 눈은 소름 끼치는 리얼리티를 구현한다. 세밀하게 드러난 디테일은 그것이 결코 허구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실임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관람자는 속이 뒤집히는 불편함 속에서도 동시에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 이미지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현실 자체, 다시 말해 인간 주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차원인 라캉적 실재(the Real)의 단면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조선희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응시의 부재를 현전시킨다. 몇몇 새들은 눈을 뜨고 있다. 그러나 죽은 새의 눈은 이미 생명이 정지된 응시다. 이 응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응시는 보통 교호적이며 되돌아온다. 그러나 라캉에 의하면 응시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살아 있는 자의 시선을 돌려받을 수 없는 죽은 눈은, 관람자의 시선에 응답하지 않는 시선으로 남는다. 새의 눈은 대상과 주체의 상호적 관계를 차단한 채, 침묵하는 타자의 응시로 존재한다. 그것은 주체를 불안에 빠뜨리는 시각적 잔여, 대상로서의 응시가 된다. 관람자는 시선을 보내지만, 그 응시는 끝내 되돌아오지 않으며, 대신 부재와 죽음의 공백만을 경험한다. 따라서 새의 눈은 단순한 시각적 세부가 아니라, 관람자로 하여금 죽음과 생명, 주체와 타자, 응답과 부재라는 근본적 질문에 직면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라캉의 관점에서 보자면 새의 응시는 주체를 안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파괴의 충동으로 이끈다. 관람자는 새의 눈과 마주치며 자기 안의 불안한 욕망, 파괴적 충동과 마주한다. 이때 죽은 새의 응시는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주체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죽음충동(Thanatos)을 불러내는 계기가 된다. 관람자는 살아 있는 자이지만, 죽은 눈앞에서 자기 존재의 취약함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직면하며분열된 주체로 경험된다. 응시는 안정된 동일성을 보증하지 않고, 오히려 주체를 균열 속으로 몰아넣는다. 조선희의 사진은 이처럼 결여와 과잉이 교차하는 응시의 지점에서, 언어화할 수 없는 실재의 파편을 관람자에게 강제하는 시각적 장치가 된다.

라캉적 응시는 단순히 시각적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주체의 불안을 발동시키는 장치이다. 죽은 새의 응시는 살아 있는 자의 시선을 되돌려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을 자신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타자의 자리와 대면하게 한다. 그 응시 앞에서 관객은 자신이 붙들려 있는 상징적 질서가 무력화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바로 이때 인간에게 결코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실재는 불현듯 출현하며, 관객은 죽음을 타인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 안에서 죽은 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때, 관객은 단순히 이미지의 섬뜩함을 체험하는 것을 넘어, 표현할 수 없는 죽음의 실재와 직접 조우하는 불편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보존과 소멸의 역설

 

조선희의 영상작업은 관객을 이미 죽은 새의 또 다른 붕괴 장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얼음 속에서 소멸이 정지되었던 새들은 시간이 흐르며 얼음이 서서히 녹아감에 따라 차차 흐물어지고 붕괴한다. 이때, 얼음은 죽은 새의 몸을 일시적으로 보존하는 매개체이지만, 동시에 그 보존은 어디까지나 환상적 장치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해빙과 함께 영구적 보전이라는 환상은 무너지고, 드러나는 것은 죽음과 부패의 현실이다. 보존의 매개였던 얼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멸을 가속화하는 장치로 전환된다. 이 아이러니는 곧 죽음을 붙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필연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는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얼음이 녹으면서 속절없이 허물어져 내리는 새의 형상을 담은 조선희의 영상은, 새의 사체를 보전하려는 작가의 욕망 속에 이미 그 불가능성이 내재함을 노출한다. 이는 데리다가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에서 말했듯, 보존하려는 욕망 속에 이미 파괴의 충동이 내재한다는 역설과 맞닿아 있다. 아카이브는 보존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멸을 불러들이며, 결국은 파괴를 내장한다. 조선희의 얼음 속 새 이미지 또한 죽음을 붙들려는 보존의 욕망과 그 좌절의 순간을 동시에 드러낸다. 따라서 냉동된 새 사진은 단순히 죽은 새의 이미지가 아니라, 기록과 보존, 죽음과 소멸이 교차하는 데리다적 아카이브의 현현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포름알데히드 속 동물들은 영구 보존이라는 환상을 전시하지만, 조선희의 얼음 속 새는 그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박제 동물 사진이 죽음을 영원히 정지된 장면으로 환원시킨다면, 조선희의 사진은 시간의 불안정성과 소멸의 불가피성을 감각화한다. 관객은 단순히 사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무너지고 해체되는 죽음을 직접 목격한다. 얼음은 사체를 붙들어두지만, 그 순간부터 이미 해빙이라는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이다. 죽은 새의 형상은 사진 속에서 고정되지만, 그것은 영원한 보존이 아니라 끝내 사라질 운명을 지연시킬 뿐이다. 얼음과 사진은 모두붙드는 장치이면서 동시에해체의 시계를 작동시키는 매체이다. 아카이브의 이중성 속에서 관객은 보존과 소멸이 서로를 잠식하는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조선희의 작업은 제도적 아카이브의 권위와 달리 얼음이라는 일시적 매개를 통해 아카이브의 아이러니를 가시화한다. 얼음은 권위를 부여하지 않으며, 되레 시간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붕괴한다. 그러나 바로 이 무력함 속에서, 우리는 보존이 곧 소멸을 예고한다는 사실을 가장 강렬하게 직면하게 된다. 조선희의 이미지가 지닌 힘은 이처럼 제도적 보존의 환상과 달리, 보존의 불가능성과 시간의 잔혹성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

 

 

재현 불가능한 장면

 

조선희의 얼음 속 새들은 따라서 응시와 아카이브라는 두 축을 통해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욕망과 그 불가피성, 그리고 영원에 대한 불가능한 열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관객은 이 이미지 앞에서 죽음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이 어떻게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는지를 목격하며, 죽음과 예술, 현실과 환영이 교차하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얼음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붉은 피의 흔적이 퍼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관람자는, 바로 그 체험 속에서 아카이브의 환상과 그 좌절을 몸소 겪는다.

결국 조선희의 작업이 마주하게 하는 것은 재현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것은 죽음의 실체이자, 되돌아오지 않는 응시이며, 보존될 수 없는 시간성이다. 바로 이 불가능한 것들을 통해 보존과 소멸의 역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앞에서 관객은 자신이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장면, 그 부재의 자리 앞에 서 있음을 자각한다.

 

 

이필 | 미술사, 미술비평,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