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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사진 한 잔] 위기의 야생동물

Rothschild’s giraffe, Nakuruk, Kenya, 2023. ⓒMarco Gaiotti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광활한 자연과 감동적인 서사가 어우러진 세계적인 명화로 손꼽힌다. 마치 영화를 위해 작곡한 듯한 모차르트의 선율도, 수만 마리에 이르는 홍학의 군무도 쉬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북서쪽에 위치한 레이크나쿠루 국립공원은 지상 최대 홍학 서식지며, 오늘의 주인공 로스차일드기린 역시 이곳에 살고 있다. 사실 이들은 지구 위에 14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귀하신 몸이다.

해가 막 지고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진가 마르코 가이오티는 이곳 국립공원에서 로스차일드기린 한 마리와 마주했다. 600㎜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는 셔터를 급하게 누르는 대신 기다림을 선택했다. 거친 자연환경 속 기린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이토록 신비로운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가이오티는 이 사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단지 구도나 빛, 혹은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10년 이상 작업해온 그의 야생동물 초상사진에서 동물들의 서식지, 즉 ‘배경’을 더 중요하게 봐 달라고 당부한다. 급격히 증가하는 연평균 강수량, 점점 높아지는 집중호우의 강도와 빈도가 이토록 아름다운 동물들의 서식지를 빠르게 삼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기린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연을 모를 때야 의연하게만 보였지만 녀석의 얼굴에 설핏 두려움이 보인다. 평생 이곳의 기후와 지형에 적응하며 살아왔기에 최근의 급격한 변화는 곧 생존의 위기로 직결된다. 털이 짧아 체온 유지가 힘든 데다 이대로 비가 계속 온다면 좋아하는 아카시아 잎도, 싱싱한 풀과 달콤한 열매들도 곧 물에 잠겨 썩어버릴 처지다. 게다가 근육이 약한 어린 기린들은 미끄러져 다치기 일쑤라 이동 또한 쉽지 않다. 위험이 감지되면 어미는 이동을 멈춘다. 안전을 선택하는 대신 굶주림을 감수하며 수천만년 동안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어왔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공존을 위한 조율을 거듭하며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질서 한가운데 너무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어쩌면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는 이렇게 그들의 아름다운 서식지에 ‘멸종’이란 단어를 차곡차곡 심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5.07.19 951호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