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론가 길게 뻗은 길 위를 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 몽환적인 풍경이다. 사진가는 한 사람을 프레임에 담았지만, 끝내 그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다. 노인의 이름은 힐미 야부즈(Hilmi Yavuz).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철학자다. “마지막 새들, 마지막 꿈들, 마지막 미소들.” 자신을 찍은 사진 위에 직접 손글씨를 남겼다. 사진가는 포트레이트 작업에 얼굴이 아닌 뒷모습을 담았다. 그 사람이 걸어온 삶과 사유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밀 프랏은 한장의 사진보다 하나의 질문을 오래 붙드는 사진가다. 1977년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은 어느덧 50년 가까운 시간을 품게 되었다. 그는 아나톨리아의 가장 외진 마을에서부터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튀르키예라는 땅 위에 축적된 시간을 기록해 왔다. 그의 사진에는 언제나 철학적 사유가 스며 있다. 바다를 찍으면서도 풍경이 아닌 자신의 삶을 은유했다. 그의 시선은 야부즈로 대표되는 ‘길(Yol)’ 시리즈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업을 막 시작하던 무렵, 프랏은 야부즈의 문명사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둘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다. 마치 음유시인들처럼 프랏이 사진으로 질문을 던지면 야부즈는 글로 응답하며 대화를 이어왔다. 결국 그들이 바라본 것은 같은 세계였다. 한 사람은 이미지로 다른 한 사람은 언어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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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곁을 지켜주는 벗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50년 가까이 이어온 그의 작업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프랏이 세상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에, 야부즈 역시 오랜 시간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나톨리아도, 카파도키아도, 모스크의 돔도 그의 사진에서는 모두 하나의 길이 된다. 그리고 그의 길은 목적지를 향하지 않는다. 그 길은 한 사람과 한 시대의 삶, 기억, 그리고 사유를 품은 채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프랏은 말한다. 길은 언제나 그 안에 하나의 ‘마지막’을 숨기고 있다고. 그리고 야부즈는 그 길 위의 자신을 향해 적는다. “마지막 새들, 마지막 꿈들, 마지막 미소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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