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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일보] 얼음에 갇힌 시간의 역설…조선희 ‘Frozen Gaze’가 흔드는 사진의 정의

대구 루모스서 5월 개막, 얼음 통해 ‘지연된 붕괴’ 탐구
사진·영상 결합으로 보존 욕망과 소멸의 긴장 드러내

▲ 조선희 사진전 Frozen Gaze 잉여의 시간 포스터

 

이미지는 과연 순간을 붙드는 기록인가, 아니면 사라짐을 지연시키는 착각인가.

조선희의 사진전 ‘Frozen Gaze: 잉여의 시간’은 이 오래된 질문을 정면으로 끌어올리며 사진이라는 매체가 전제해온 ‘정지된 순간’의 개념을 뒤흔든다. 전시는 오는 5월 6일부터 6월 6일까지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대상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서 한 걸음 물러나, 그것이 놓인 조건과 변화의 흐름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죽은 새, 얼음, 한지 등 다양한 물질을 활용해 대상이 특정한 상태에 머물도록 설정하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이미지의 순간을 포착한다.

△ 얼음, 보존이 아닌 ‘지연된 붕괴’의 장치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매개는 ‘얼음’이다. 그러나 여기서 얼음은 흔히 생각하는 보존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붕괴의 속도를 늦추며 그 사이의 시간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물이 얼어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균열과 기포, 미세한 결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상과 결합한다. 이미 죽음으로 멈춘 형상 위에 또 다른 시간의 층위가 겹쳐지는 것이다. 그 결과 대상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인다.

이 지점에서 조선희의 작업은 사진의 전통적 개념과 충돌한다. 사진이 ‘결정적 순간’을 고정하는 매체라면 이 전시에서 이미지는 ‘진행 중인 변화의 단면’으로 제시된다.

△ 응시의 단절…되돌아오지 않는 시선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응시’다. 얼음 속에 고정된 새의 형상은 관람자에게 강한 불편함을 유도한다. 눈을 뜬 채 멈춰 있는 형상은 마치 응시하는 듯 보이지만 그 시선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비대칭적 관계는 관람자를 단순한 감상자의 위치에서 끌어내린다. 이미지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흔들리며, 관람자는 생명과 죽음,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에 서게 된다.

특히 얼음 표면 아래에 스며든 붉은 흔적과 균열, 기포는 사진을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관람자는 단순히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소멸을 ‘체험’하게 된다.

△ 사진과 영상, 고정과 해체의 교차

이번 전시는 사진에 머물지 않는다. 영상 작업은 얼음이 녹으며 형상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정된 형상은 해빙과 함께 흐트러지고 보존의 환상은 무너진다. 이 과정은 ‘붙들고자 하는 욕망’과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사진이 정지의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영상은 그 정지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인지를 폭로한다. 두 매체는 서로를 보완하며 고정과 해체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간의 역설을 구성한다.

△ 보존의 욕망, 그 불가능성에 대한 성찰

전시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지점은 인간의 ‘보존 욕망’이다. 무엇인가를 남기고 기록하려는 시도는 결국 소멸을 지연할 뿐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얼음은 대상을 붙들어두지만, 동시에 녹아내리며 붕괴를 예고한다. 사진 역시 형상을 고정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보존이 아니라 사라짐의 시간을 늦출 뿐이다.

이처럼 조선희의 작업은 보존과 소멸이 서로를 잠식하는 구조를 드러내며, 우리가 믿어온 기록과 아카이브의 개념을 다시 묻게 만든다.

△ 설명 대신 체험…동시대 예술의 흐름 반영

‘Frozen Gaze’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관람자가 이미지 앞에 머무르며 감각과 시간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이는 최근 동시대 예술이 서사적 설명보다 감각적 체험을 중시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관람자는 작품을 해석하기보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지역 전시공간의 역할 확대

이번 전시는 대구 지역의 사진 전문 갤러리에서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역 전시공간이 단순한 전시 기능을 넘어 동시대 미학적 논의를 생산하는 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수도권 중심의 전시 구조를 넘어서는 흐름으로도 읽힌다.

결국 ‘Frozen Gaze’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이다.

이미지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관람자는 답을 얻기보다 사라짐이 진행되는 시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 자체를 마주하게 된다.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경북일보 2026.04.13 지면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