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보다 주변 풍경·웃음소리·다양한 감정에 초점
10년간 英 공항 일대 3개 시리즈
기다림으로 공항·이방인과 소통
말 없이 인간의 내면적 변화 기록
실패는 쌓여 다음 위한 토양 돼
귀국 후 설치·비디오 아트 확장
민물고기로 환경 오염 문제 제기

공항만큼 극적인 장소도 드물다. 출발과 도착이 극명하게 갈리고,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한다. 만남과 이별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 축 중의 하나라고 했을 때, 공항은 사실상 인간 경험의 양면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무대와 다르지 않다. 단순히 사람들의 이동을 수용하는 기능적인 공간을 넘어, 개인적 여정의 시작과 끝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다양한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인 것이다.
사진가 김신욱이 공항을 바라보는 시선은 보다 복잡다단하다. 그에게 공항은 예술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라 도착한 첫 발자국이자, 생계와 삶을 지속하는 현장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하며 생활비와 학비 조달을 위해 여행 가이드 일을 했다. 공항은 그에게 여행객의 시작과 끝에서 만나야하는 장소였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영국에서 석·박사 공부하는 10년 동안 런던의 히드로 공항을 3,000번 이상을 방문했어요. 공항은 제겐 특별한 장소 중 하나였죠.”

김신욱 경일대 교수(사진영상학부)의 개인전 ‘공항으로 간 이방인 The Stranger and The Periphery’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런던 히드로 공항 일대를 배경으로 작업한 세 개의 사진 시리즈를 모았다.
그가 공항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은 여행 가이드 일을 한지 3년 정도 됐을 때였다. 공항에 도착한 여행객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들 속에서 문득, “공항이 만남과 이별 외에도 다양한 서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항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공항 이용객이나 공항 주변의 주민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비행기 이착륙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모여든 사진가들에게도 다가갔다.
“공항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고, 비행기 이착륙을 기다리는 사진가들에는 ‘왜 비행기를 기다리느냐?’고 묻고 다녔어요. 공항 주변 주민들에게도 ‘공항이 무엇인지?’, ‘공항 주변의 삶은 어떠한지?’ 등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죠.”
공항과 공항 인근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자 공항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소통 이전의 공항이 단순히 도착하고 떠나는 공간으로 제한됐다면, 소통 이후에는 공항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그때는 예술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보다 공항이 예술사진을 위한 훈련장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공항에서 만나 대화한 사람도 찍고, 공항과 그 주변 풍경도 찍고, 심지어 쓰레기도 찍었으니까요.”

공항을 새롭게 바라보자 의외로 공항 주변에 펼쳐진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발견됐다. 비행기 승객들의 사연도 제각각이었고, 공항 주변 사람들의 삶도 다양했다. 공항의 경계인 담장과 인접한 곳은 서남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의 삶의 현장이었고, 그들은 주로 공항 관련 업종에 종사했다.
‘이동의 중심지’라는 공항이 가진 특수성은 공항 주변의 풍경까지 바꿔놓았다. 공항과 비현실적으로 가깝게 조성된 주택가에는 불안정한 정서가 감돌았고, 그곳에 뿌리 내린 사람들의 삶 또한 주변부라는 이민자의 정서가 깔려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자신의 내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그들의 보편적 삶을 향한 열정은 감성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공항과 공항 주변 사람들의 삶에 시선을 두자 다양한 서사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에서 오는 공허함과 긴장감, 기쁨과 슬픔이 복잡하게 얽혔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공항에 내재된 억압적인 부분도 감지할 수 있었다. 중력을 거부하고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초월성, 공항 건설을 위해 부서져 내린 공항 주변의 역사들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다양한 감정들을 직시하며, 공항을 일종의 ‘말없는 목격자’로서,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기록하는 장치로 활용해갔다.
사실 풍경은 침묵의 대상이다. 스스로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침묵하는 풍경에서 풍경이 퍼트리는 진동을 포착하는 것이 사진가의 역할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말보다 오래 바라보는 것이 먼저다. 멀리서 눈을 맞추고, 몇 번 스쳐 지나고, 서로의 온기를 천천히 나눌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떤 관계는 침묵 속에서도 신뢰가 싹트는 법이다.
그는 오랫동안 대상을 바라보며 그들이 건네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피사체와 소통한다. “오늘은 그냥 걷자.” “오늘은 이 자리에서 기다리자.” 카메라를 들고도, 셔터를 한 번도 누르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머물렀고, 때론 몇 달 동안 같은 골목을 반복해서 찾기도 했다.
익숙한 풍경 안에서 그가 기다린 것은 낯선 진동이었다. 도식화된 공항과 주변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동으로 풍경을 재해석해야 하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 찍지 못한 풍경들이 쌓여갔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저려왔다. 3년 정도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다 문득 놓친 순간들, 기다림뿐인 날들, 무너진 빛과 사라진 얼굴들 속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10~20%의 성취에 그쳤다. 그런 실패 속에서 그는 큰 깨달음과 만났다. “사진에 왕도는 없다”는 것. 그는 수없이 실패하고, 검토하고, 다시 찍고 하는 무한 반복의 과정 속에서 실패를 컨트롤하는 역량을 쌓아갔다. “실패가 공허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제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다음 순간을 위한 토양이 되었죠.”
그가 담고 싶었던 것은 특별한 장면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살아있는 시간’을 담아내면 그만이었다. 그에겐 “카메라 프레임 안에 있는 것도, 그 너머에 있는 사라진 것도 모두 소중”했다. “비행기 소리에 묻힌 웃음소리, 창문 너머 나른하게 흐르는 오후의 빛, 허공을 올려다보는 이방인의 눈빛 같은 것들은 아주 작은 진동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진짜 풍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이후 그의 작업은 확장을 거듭했다. 사진을 넘어, 설치, 비디오 아트, 사운드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며 작업의 폭을 넓혀왔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다변화됐다. 한국의 영토에서 극단적인 지점들, 예컨대, 백두산이나 울릉도 등 지리적으로 경계에 놓인 장소를 주제화했다. “경계에 대한 관심은 영토나 의식의 확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도 다뤘다. 금호강이나 낙동강에서 만난 민물고기 사진이 대표적이다.
황금만능으로 치닫는 현대인의 세태도 꼬집었다. 2018년에 울릉도 앞바다 발견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을 지켜보며, 돈스코이호의 침몰을 역추적 해간 작품들이 그것이다.
작품의 대상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있다. 그는 특별한 장면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살아 있는 시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제게는 카메라 프레임 안에 있는 것도, 그 너머에 사라진 것도 모두 소중합니다.”
‘공항’ 프로젝트에선 중요한 것은 비행기 자체보다 비행기 소리에 묻힌 웃음소리, 창문 너머 나른하게 흐르는 오후의 빛, 허공을 직시하는 이방인의 눈빛 같은 아주 작은 진동들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진정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