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장의 이미지에 단서들이 참 많다. ‘최고의 대통령’이 적힌 어깨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닮은 남자, 미소와 갈채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 벽면과 모니터엔 ‘Goldman Suchs(골드만석스)’로 가득하다. 10월 15일. 사진가는 콕 찍어 날짜까지 정해준다. 이날 그들 사이에 무슨 행복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You shall not steal(도둑질하지 말라).” 탐하는 마음과 이기심을 경계하라는 십계명의 8번째 조항이다.
미국에서 성경은 정치인은 물론 사회 활동가들이 정책을 알리거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주 언급되며 공적 생활의 큰 역할을 차지한다. 이스라엘 태생으로 현재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 디나 골드스타인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후 그간 관찰해온 급변하는 미국의 모습을 ‘10 Commandments(십계명)’이란 시리즈에 담기 시작했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 10명을 현대적 배경 속에 등장시키며 말이다. 골드스타인이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들을 십계명의 교리와 병치한 작품 시리즈는 생생하고 도발적인 풍자로 가득하다.
2009년 10월 15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Sachs)는 ‘돈 잔치’를 벌였다. 지금 환율로 22조4000억원이 넘는 돈을 직원들의 보너스로 준비했다. 문제는 이 돈이 남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것도 혈세였던 것이다. 2000년대 초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신용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결국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를 강타했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국민이 노숙자로 전락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어쩔 수 없이 구제금융을 시작했고 약 92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은행들에 보내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금에, 상여금 잔치가 있었다. 서브프라임 스캔들로 유죄 판결을 받은 억만장자 역시 단 한 명도 없었다.
여러 학술 에세이와 논문의 주제가 되고 있는 그녀의 사진 속엔 비단 미국만이 아닌, 세상 곳곳 만연한 도덕적 해이와 위선이 어려있다. 그런데 어라 보자 하니 이 사람들이 웃고 있다. ‘제발 양심 좀’ 탄식이 절로 난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SUNDAY 2025.03.29 935호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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