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칠판과 높다란 사다리, 그리고 사다리에 걸터앉은 이들이 비슷한 듯 다른 듯 대칭을 이룬다. 왼쪽 칠판에는 삼성을 위시한 전 세계 500대 다국적 기업의 로고가, 오른쪽엔 전 세계 명문 대학의 이름과 로고가 빼곡하다. 두 장의 사진이 한 작품으로 구성된 딥티크(diptich) 형식을 취한 이 작품 ‘One World, One Dream’ 속에는 제목 그대로 단 하나의 세상과 단 하나의 꿈이 존재한다.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꿈이 그것이다.
이 사진은 중국 현대사진예술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진가 왕칭송(王劲松)의 ‘황홀사회’란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란 황홀한 기적을 가져온 중국의 개혁개방,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황홀이 존재할 수 있을까. 대륙 곳곳이 건축 현장으로 바뀌자 공해에 시달리게 된 삶터, 꿈을 찾아 도시로 왔지만 부랑자처럼 떠돌게 된 사람들, 전통과 현대의 괴리, 막막한 현실과 허황된 꿈 사이의 불화를 시작으로 중국은 황홀함에 대한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왕칭송은 1997년부터 도시·교육·종교·의료·전통 등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수많은 불협화음의 문제들을 웅장한 스케일의 사진 속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사회현상을 그저 렌즈에 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현실을 재구성한다는 매력이 있다. 그것도 정교한 의도와 날카로운 풍자, 창의적인 연출이라는 ‘역할극’을 더해서 말이다. 연극무대처럼 과장된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하기까지 시대적 배경과 상황들, 각각의 인물이 지닌 역할과 소품 등 작은 디테일까지 그는 자신의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뛰어난 감각을 지닌 사진가다. 2014년 작품인 ‘One World, One Dream’에서 명문 대학이란 오른쪽 사다리와 돈의 원천인 다국적 기업의 사다리를 자세히 한 번 살펴보시길, 사다리에서 혼자 딴짓에 열중하는 한 사람, 사진가 왕칭송의 세상과 꿈은 어디를 향하는지 말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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