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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사진 한 잔] 뉴 쿠바인

The New Cubans, 2023, Havana. ⓒJean-Francois Bouchard


아름다운 해변과 정열 가득한 살사의 나라, 흔히들 떠올리는 쿠바의 이미지다. 기본 의약품도 구하기 힘든 경제난에 너나 할 것 없이 대탈출을 감행하는 현실을 잠시 잊었을 때 말이다. 한때 활기 넘치던 쿠바의 아름다운 심장,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뉴 쿠바인’이라 명명한 사진가가 있다. 장 프랑수아 부샤르는 축적된 과거와 덧없는 현재 위에 살아가는 뉴 쿠바인의 초상을 통해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쿠바의 모습을 전한다.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한 가정집에서 ‘이국적이다’, 혹은 ‘괴짜’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단 한장의 싱글 이미지건만 시각적 평면 위에 수많은 서사의 레이어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가보로 전해진다는 벽면의 장식품들은 옛 시간이자 동시에 새로운 물건을 살 수 없는 쿠바의 현실이기도 하다. 문신 가득한 두 젊은이는 바로 쿠바 혁명의 거대한 내러티브 대신 개인주의에 몰두하며 자신들만의 흥미로운 서브 컬쳐를 구축한 ‘뉴 쿠바인’이다. ‘전통적인 쿠바’와 ‘새롭고 젊은 쿠바’의 극명한 대조, 그 강렬한 충돌은 부샤르에게 거의 영화에 가까운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물했다. 공산주의 정권 아래 당연히 억압됐으리라 여겼던 라이프스타일이 진보적인 포용성과 개방성, 그리고 다양성으로 표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샤르는 렌즈를 거울삼아 많은 이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우리 세대의 인류학자라 불린다. 전 세계를 무대로 평범하지 않은 관심사와 소외되고, 오해받고, 종종 배척당하는 이들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두고 다큐멘터리 작업과 개념 사진의 정교한 허구, 그 교차점에서 작업하던 그에게 ‘뉴 쿠바인’은 얼마나 매력적인 주제였을까. 더구나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기도 전에 젊은이들이 쿠바를 떠날 것을 알기에 작업은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었다. 낙관주의와 우울함이 혼재된 부샤르의 작업은 과거의 꿈이 현실로 바뀌는 전환기 쿠바 사회의 초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가와 빈티지 자동차, 냉전의 잔재 등 그간 쿠바가 가졌던 진부한 묘사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현재의 쿠바로 떠나는 시각적 여정이 짜릿하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중앙선데이 2025.02.15 929호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