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식·묘지 등 추모 장소 찾아 촬영
한국 제례문화 포착, 사료적 가치 커

무거운 기운이 전시장을 휘감는다. 전통상여와 삼베 상복을 입은 사람들, 불길이 치솟는 큰 스님의 다비식, 무속인이 진행하는 진혼식 등 마지막 순간이나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제례가 치러지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들 앞에서 무서움이 엄습한다.
전시 제목 또한 ‘歸’, ‘돌아갈 귀’. ‘죽음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한 컷의 사진에 담아낸다. 사진작가 박찬호의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이 존재하거나 제례가 행해지는 장소를 끊임없이 찾아가 사진으로 남기고 있어요.”
인간에게 죽음과 사후세계는 영원한 과제다. 극복할 수 없고, 살아서 마주할 수 없는 세계여서 그렇다. 수많은 예술과 문학과 종교에서 궁극의 주제로 다뤄온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극복할 수 없음에 애써 피하고 싶은 주제다. 작가가 무겁고 힘에 부치는 주제를 굳이 정면으로 대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언급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3년간 엄마의 병간호를 하면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았고, 죽음까지 목격하게 됐어요. 그때 죽음이 큰 트라우마로 남았죠.”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40대 때였다. 사업실패와 가정불화 등으로 우울증이 심해졌고, 이유를 알 수 없어 카메라를 메고 헤매다녔다. 당시 사진이 유일한 해방구였다. 우연히 마을 제례 행사를 찍으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주제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러면서 제례는 물론 큰스님들의 다비식이나 무속의례 장소들까지 찾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된다. “죽음이나 사후 세계가 존재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인간의 삶은 모두 힘들다’는 것을 깨달게 됐어요. 사적 트라우마가 공적인 질문으로 확장된 거죠.”
작가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면서 어머니의 죽음으로 마주한 트라우마가 자신의 문제로 다가왔다. 삶의 마지막이나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묘지나 장례식, 기도를 위한 장소 등을 촬영하며 더 절박하게 죽음의 실체를 찾아나갔다. 당시 그를 사로잡은 것은 불교교리나 의식들이었고, 그런 것들에 심취되면서 조금씩 치유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나무나 돌이나 돌부처에 너무나 간절하게 ‘자녀의 행복’을 기원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수십 년간 억압돼 있던 죽음에 대한 고통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해방되는 것을 느꼈어요. 치유였어요.”

작가의 설명을 듣자 작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들어설 때의 무서운 느낌 대신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설명의 효과였다. 이쯤에서 10여년이라는 긴 시간 죽음을 탐구하고 깨달은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가 피식 웃으며 “기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인간이 죽으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고 했다. 이 깨달음은 곧 ‘우리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로, 그리고 ‘우리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고도 했다. 죽음에 대한 질문이 곧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는 의미였다.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극복되고 나니 제 삶 속의 관계도 편안해지고 욕망도 줄어들었어요. 삶이 감사하게 느껴졌죠.”
국회도서관에서 마을제례가 열리는 장소를 먼저 찾아보고 출사를 떠난다. 작가가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전통제례가 열리는 장소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작가의 사진들이 예술성을 넘어 사료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 작가는 10여년간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와 함께 최근에 사진집을 발간하고 전시를 시작했다. 전시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내달 6일까지. 053-766-357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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