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부터 2월 26일까지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들풀들이 있다. 밟히는 줄도 모르고 밟히는 잡풀들이 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들이다. 작가는 어느 날 문득 그 들풀들에, 잡풀들에 눈길이 갔다. 이름이 없지는 않을 것인데도 이름 없이 살아가는 들풀들이, 밟히는 줄도 모르고 밟히는 잡풀들이 꼭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저들만의 세상이 있을 것이지만 세상인심과 동떨어져서 살아가는 모습이, 존재가 저 자신의 모습을 닮았고 존재를 닮았다. 그래서 들풀들이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주기로 했고, 잡풀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되찾아주기로 했다.
한국사진콘텐츠연구소와 아트스페이스루모스에서 주최 주관하는 첫 번째 지역작가 시리즈 ‘꽃의 이름을 잊다 Forgetting the names of flowers’ 최근희 사진전이 1월 24일부터 2월 26일까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로 139 5층)에서 열린다.
자연 속으로 돌아간 화분의 기억들을 통해 외로움과 강인함, 그리고 식물들의 생명력을 옅볼 수 있는 이 전시는 잊혀진 손길 속에서 피어난 생명의 이야기와 버려진 식물들, 생존과 외로움의 기록을 말하며 한때 사랑받던 존재들이 전하는 삶의 순환을 그려낸다.
원예용으로 선택받아 화분 속에서 자라던 이들은 이제 잡초라 불리며 야생 속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사랑받으며 정원의 화려함과 집안의 온기를 책임졌던 식물들이 어느새 잊히고 버려진 것이다.
이 버려진 식물들은 외로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길가, 폐허, 돌보지 않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당해 보이지만, 한때의 사랑과 관심이 남긴 상처를 품고 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순응을 넘어선 절박한 몸부림이며, 그들의 생존은 삶의 기적과 슬픔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또 한때 소중했던 것들과 지나간 관계를 반추하며, 식물들의 모습을 통해 잊힌 것들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별은 꽃의 이름을 잊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사랑했던 순간의 향기가 사라진 후에도 그 흔적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다.
이 전시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야생으로 흩어진 잡초와, 이별 후 남겨진 마음의 상처를 연결한 이야기이다. 과거 누군가의 정원에서 소중히 가꾸어졌으나, 더 이상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는 존재, 잡초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공간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간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관계의 유한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는 우리가 잊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삶의 순환 속에서 존재 의미의 탐구이기도하다.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기억의 소멸과 생명력의 지속성, 그리고 잊히면서도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길 바란다.
작가는 식물들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싸우지 않고 순응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사는 방법을 죽음을 염두 하는 삶이라고 불렀다. 왜 염려하는 삶이 아니고, 염두 하는 삶이라고 했을까. 염려하는 삶과 염두 하는 삶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죽음을 염두 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 아마도 죽음을 염려하는 삶, 그러므로 삶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멀리하는 삶이 아니고, 죽음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삶, 죽음을 삶처럼 모시고 사는 삶을 의미할 것이다. 죽음 자체만 놓고 본다면 바니타스 그러므로 무상한 삶의 또 다른 한 버전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블루에는 우울한 기질을 의미하는 문명사적 배경이 있다. 다크블루. 블루가 깊다. 우울이 깊다. 작가가 삶을 들여다보는 색깔일지도 모르고, 깊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Pr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신문] 잊히고 버려진 식물의 외롭고도 강인한 모습…최근희 개인전 (0) | 2025.04.04 |
---|---|
[중앙SUNDAY] [사진 한 잔] 당신만의 스토리텔링 (0) | 2025.04.03 |
[중앙SUNDAY] [사진 한 잔] 지구온난화의 경고 (0) | 2025.04.03 |
[영남일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다층적 시선(Multilayered Perspectives)'展 개최 (0) | 2025.04.03 |
[매일신문] 사진·영상·VR…다양한 매체 통해 엿보는 현대 예술의 가능성 (0) | 2025.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