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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문화산책] 한국의 ‘굿’

어린 시절, 동네에 굿판이 벌어진 적이 있다. 지병에 시달리는 동네 아저씨를 위한 굿판은 재밌기도 하고 설핏 무섭기도 했다. 기둥 뒤에 숨어 구경을 하던 아이들에게 아줌마는 떡을 하나씩 나눠주셨다. 말 그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던 것인데, 따뜻하고 하얀 떡을 자랑삼아 집에 가져온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에게 혼이 났다. 굿판의 음식을 잘못 먹으면 아이들이나 아픈 이들에겐 귀신이 옮겨 붙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나에게 ‘굿’은 떡과 화난 엄마의 기억으로 새겨졌다.

지난해 한 사진가로부터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자를 잘 분해해서 보면,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그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 무(巫)당이 된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왕이나 양반들에게는 유교식 제의가 있었지만 누구 하나 위로해 줄 이 없던 평민들은 무당의 굿을 통해 명복을 빌었다. 한풀이요, 영혼을 부르는 소리라 불리는 굿, 사람들은 무당의 도움을 받아 원도 풀고 한도 풀며 근근이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생활 가까이 있었던 굿은 일제강점기와 6·25,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고된 세월을 마주했다. ‘근대화’를 외치던 그 때, 굿은 미신타파란 이름아래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굿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던 그때부터였다. 굿판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아졌다.

2008년 즈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무당굿 사진전을 만난 기억이 있다. 30여년간 전국 곳곳의 굿판을 누볐기에 사진 찍는 무당이라 불리던 사진가 김수남의 전시였다. 그는 1983년, 황해도 내림굿을 시작으로 10년 뒤 서울 지노귀굿까지 스무 권이나 되는 ‘한국의 굿’을 출간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삶과 죽음, 하늘과 사람을 잇는 생생한 현장에서 삶의 기쁨과 희망, 억눌린 이들의 한과 눈물을 담아낸 그 책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집인 동시에 한국전통에 대한 살아 있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개인으로부터 마을, 그리고 나라의 안녕과 풍요까지 확장되는 굿은 나의 어린시절과 달리 인류학적, 문화 예술적으로도 반짝이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굿’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는 내년부터 헝가리를 시작으로 유럽 순회전시로 이어질 ‘Gut_breath of the Spirit’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김수남, 김동희, 이한구, 이규철, 안세홍, 박찬호 등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6명이 포착한 한국의 굿을 신명나게 펼쳐 보이고 올 예정이다. 큰 무당이 세상을 뜨면서 자취를 잃어가는 굿들이 많아지는 요즘, 사진으로 포착한 굿판의 질긴 생명력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박연정 (빛글 협동조합 대표)

 

이은경 기자

영남일보 발행일 2019-10-14 제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