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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_소멸과 재생 OBJECTS_Extinction and Renaissance
수탉이 울고,
냇물은 흐르고,
작은 새들은 지저귀고,
호수는 반짝거린다.
산에는 기쁨이 있다.
샘에는 생명이 있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가 읊조린 풍경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던 강원도 속초와 고성. 하지만 지난 4월 바람을 타고 강원도 곳곳으로 번진 화마는 수많은 이들의 삶에 깊고 아린 생채기를 냈다. 화재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고 장마철을 앞두고 복구마저 늦어져 피해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는 실정이다. 화재가 난 뒤 일주일 후, 사진가 윤길중은 그곳을 찾았다. 갑작스런 재해로 수명을 다한 ‘소멸Extinction’의 흔적들이 그를 부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봄이었지만 긴 겨울처럼, 회색빛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사진가 윤길중의 작업은 사물에 또 다른 생명을 부여하는 되살리기, ‘재생Renaissance’에 있었다. 철거를 앞둔 집들과 버려진 낡은 집기들, 외딴 섬에서 쓰러진 채 살아가는 나무의 삶처럼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거나 중심에서 밀려나 방치되어 있는 것들은 그의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사실 이런 작업은 그의 직업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쓰임을 다한 플라스틱을 재생해서 새롭게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는 그였기에 우리 주변에 널린 ‘오브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사뭇 우리와 다른 듯하다.
세상에서 ‘오브제’와 무관한 예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때로 오브제는 예술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 예술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며, 작가의 감성을 드러내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윤길중은 ‘불탄 오브제’와 ‘불태운 오브제’를 선보인다. 해외에서도 호평 받는 그의 작업 에 등장하는 불태운 오브제들은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함으로써, 사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Renaissance’을 위한 노력이요, <불행한 오브제>에 등장하는 불탄 오브제들은 갑작스런 재해로 생명을 다한 사물들, 그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릴 수 없는 ‘소멸Extinction’의 안타까움이 스며들어 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의 초대 기획전 <오브제_소멸과 재생>이 사진가 윤길중 특유의 작가적 시선과 통찰을 만나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 전시가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작은 걸음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너무도 감사한 일일 것이다. 전시장 벽면에 배치된 회색빛 오브제들은 사라지지 않을 리얼리즘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불행한 오브제가 행복한 오브제가 되길, 소멸Extinction의 오브제가 재생Renaissance의 오브제가 되길, 안타까운 마음에 되뇌어본다.
루모스
ArtSpace Lu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