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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목소리III
제주 4.3의 현장에서 올리는 아름다운 제의
-고현주 사진전<기억의 목소리Ⅲ>
“보자기에 (등을 담아) 수백 번 묶고, 풀 때마다 그들에게 이 빛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빌었다. 서글프고 아름다운 사진 속 풍경이 또한 보는 사람들을 위무하기를 바랐다.”
일출봉, 섯알오름, 다랑쉬오름, 함덕해수욕장, 정방폭포, 영궤......
사진작가 고현주는 등과 바구니와 색색의 보자기들을 들고, 제주의 여러 장소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모두가 4.3 당시 학살이 자행되었던, 70여 년 전 그날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현장을 목격했을 늙은 폭낭의 가지에 등이 담긴 보자기를 매달았다. 오름의 능선에, 해안가 돌들 사이에, 물 위에, 그 장소에서 죽임을 당한 희생자의 수만큼 보자기로 싼 등불을 놓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마음이 같은 여러 지인들이 그녀를 도왔다.
이번 전시<기억의 목소리Ⅲ>은 그때의 아름다운 제의의 기록이다. 풍경 위에 제구祭具 처럼 점점이 등불들이 놓이자, 70여 년 전 현장의 기억이 환하게 되살아난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중첩되면서, 소리 없이 묻혀 있던 ‘기억의 목소리’들이 소리를 낸다.
2014년 제주의 거대한 자연 앞에 단독자로선 인간의 모습을 담은 <중산간> 시리즈를 발표함으로써 ‘제주’에 잇닿아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바 있는 고현주는 2018년 지금의 시리즈를 시작했다.
“제주의 너무 많은 빚을 졌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억이 목소리’작업은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사물에 스민 제주의 4.3의 이야기’라는 부제로 희생자들의 유품과 사물의 서사를 쫓는 첫 번째<기억의 목소리>는 작가가 암 투병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5년여 동안, 작가는 3부작 작업을 앞ㄴ 몸을 이끌고 해낸 것이다.
고향이 제주여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름답게만 여겼던 풍경 속 비극을 알아챈, 늦깍이로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가로 활동하기 전까지 제주에서 음악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감수성과 이성이, 그녀로 하여금 아픈 몸으로도‘무거운 마음을 일으키게’ 했을 것이다.
완결편인 <기억의 목소리Ⅲ>을 전시와 책으로 펼쳐보이며, 작가는 말한다. “이 작업을 하면서 작업을 도와준 분들도, 나 스스로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라고.
고현주 사진전<기억의 목소리Ⅲ>은 지난 11월 제주의 사진갤러리‘큰바다영’에서 먼저 제주도민에게 보여졌다. 뒤이어 12월 서울 갤러리‘류가헌’, 2023년 1월 대전 갤러리‘더빔’, 2월 진주 갤러리‘루시다’에서 선보인 후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안타갑게도 서울 갤러리‘류가헌’ 전시 오프닝 날이 고현주 작가의 발인 날이 되었다.
2022년 12월 4일 새벽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