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Exhibition > Upcoming
Past
13년의 밤
커피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터키식 커피인 이브릭은 달임식 커피로, 다른 추출 방식의 커피에 비해 (원두) 찌꺼기가 컵에 많이 남는다. 터키인들은 커피를 다 마신 후 바닥에 남은 흔적을 통해 그날의 운을 점친다고 한다. 그 흔적이 나에게는 원이미지(Original Iamge)를 넘어 반전된 이미지, 또한 우주와 관련된 여러 이미지들이 생각났었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The Red Violin, 1998)의 내용처럼 뭔가 오랜 운명으로 얽힌 것이 한순간에 다가왔다.
이 작업은 본 전시의 타이틀과 같이 10년가량을 테스트의 시간을 거치며 서브 작업으로만 진행하였다. 메커니즘에 대한 한계란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지 자체로만 다가오는 것에 대한 흥미는 없다. 작가의 작업은 나만의 체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로 부끄럼이 없어야 하기에, 작업마다 이미지 표현에 따른 연구 목표를 삼고 진행한다. 예전의 몇몇 작업을 예로 들자면 각각의 소재와 표면적인 타이틀이 있긴 하지만, ‘구성에 대한 훈련’, ‘빛에 대한 이해’, ‘비유/대구로 사진적 표현’ 등 계속 나만의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10년이란 시간은 강산을 바꾸기도 하지만, 보는 관념도, 더 나아가 생각 자체를 바꾸기도 하는 듯하다.어느 날은 주변 동료 작가(Painting)의 작업하는 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한 곳을 며칠이나 칠하는 모습, 오직 본인만 이해하는 반복된 행위. 그 모습 속에서 비젼이 생겨났다.
사진의 언어라면 나는 원근감, 포커스 등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페인팅을 하는 동료는 미술의 언어는 점, 선, 면이라고 말하였다.사진도 내가 말한 것 외에 다른 것들이 많겠지만, ‘점, 선, 면은 회화만의 것이 아닌 모든 시각 예술의 기본 요소가 아닐까?’ 한곳을 파는 회화 작업을 하는 작가의 파는 행위-그들은 그것을 ‘판다.’라고 말하였다.-를 통해 저것이 심상이고, 작가(Painting)만의 언어가 아닐까 라는 확신이 들었다.
C.T.<Coffee trace> 작업은 컵의 바닥에 새겨진 흔적, 즉 커피가 마른 자국을 스캐닝 하여 반전한 이미지이다.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은 작업이지만, 초기 단계에서 컵 바닥을 사각 포맷으로 크롭 하여진행하는 작업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이미지가 촬상 소자에 기록되는 사진의 광학 원리와 비슷한 듯하다. 지름 6cm의 크기에서 20배 이상 스캐닝을 통해 나타난 이미지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불필요한 레이어들이 존재한다. 스캐닝을 통해 나온 직접적인 이미지에 내면적인 해석인, 지우고(remove), 콘트라스 조절(adjustment), 병합(merge) 등의 과정을 거쳐, 때론 붓으로 지워내거나 그려내기도 하여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보는 것에서 벗어나, ‘들여다보는’이라는 과제를 통해 이번 작업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감정을 작품에 투영해 보고자 시도하였다.
단순히 우주를 닮은 이미지에서 '내가 만든 세계' 13년이란 시간은 기다릴 만하다. 시간은 그렇게 가치관 또한 변화하게 만들었지만,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기에, 한동안은 또 이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2022.11.08. 지산동 작업실에서, 최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