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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루비아나
루비아나와 사귄 기간은 7개월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했다. 처음 보는 순간 나의 분신으로 느껴졌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3번이나 우승을 하는 등 명마로 이름을 날렸다. 은퇴 후 씨받이로 팔려와 8마리 새끼를 낳았다. 9번째 새끼를 낳다 실패한 후 다시 임신을 하지 못한다. 새끼 낳는 역할이 끝난 말은 안락사 시킨다. 좋은 주인을 만나 차마 퇴출시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사진가를 만났다. 자연사할 때 까지 키우자고 부탁 했다. 주인은 ‘죽을 운명이 아닌가 보네요.’하며 선선히 승낙했다. 그 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루비아나는 사진 모델이며 대화 상대였다. 사진 작업을 하러 목장에 가면 하루 두 번 먹이를 주러 목장주가 다녀 갈 뿐 아무도 없다. 루비아나와 나의 시간이다. 새벽부터 밤 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평생 쌓은 자신의 스토리를 사진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나를 돌아봤다. 동물 사진을 찍으며 생각해온 ‘생명이란? 삶이란?’ 주제와 함께 ‘늙음, 죽음’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생명의 기본 요소라는 육체, 정신, 영혼의 변화, 소멸, 생성을 느꼈다.
늙은 말은 영물이다. 루비아나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죽기 2개월 전 죽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었다. 죽은 모습,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기진맥진 고개를 들 힘도 없으면서 죽음을 연출해 주었다. 사진가가 죽는 모습을 찍기 원하는 것을 아는데 정작 죽음은 보여주기 싫었나 보다. 2020년 4월 15일은 루비아나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이번 책과 전시는 그녀에 대한 추모이면서 나를 돌아보는 전시다. 아름답게 늙고 가볍게 떠나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겨 있다.
루비아나는 자연과 친하다. 비, 바람, 눈보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은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잘 놀라는데, 신기하게도 천둥 번개 소리에는 놀라지 않는다. 말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자연과 하나다. 자연 속에서는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어디로 가지? 오염된 나를 자연이 받아 주려나.
박찬원